중학생 시절, 가장 친한 친구가 하늘 자매로 거듭났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같이 손잡고 시온에 가서 기도도 하고, 공부도 하고, 컵라면도 먹고…. 안식일 아침마다 모닝콜을 해주며 통화연결음을 흥얼거리고, 친구가 좋아하는 유명 가수에게도 새 언약의 진리가 전해지길 함께 발을 동동 구르며 소원하기도 했습니다.
저와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시온에서 조금씩 멀어지던 친구는 제가 이사한 뒤로 아예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렇다고 친구가 제 기억에서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좋아하던 가수가 텔레비전에 나올 때도, 몇 년간 미국에 있을 때도 생각났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잘 지내려나, 시온은 기억할까?’ 가끔 궁금했지만 친구와 연락 닿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2월 말, 소속 교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집사님, 혹시 ○○○ 자매님이라고 아세요?”
순간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친구의 이름이었습니다. 친구가 예전에 침례 받았던 지역교회를 방문해 저를 찾아달라고 본인 연락처와 이름을 남기고 갔다는 겁니다. 친구의 연락처를 받고 정신없는 상태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야.”
“….”
“나야, 윤정이.”
목소리가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친구와 마치 중학생 때로 돌아간 듯 대화를 나누면서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친구가 있다는 서울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20년 만에 만난 친구는 안부를 묻자마자 덜컥 눈물을 쏟았습니다. 진리를 떠난 후 한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언젠가 저와 다녔던 시온에 가보기도 했을 만큼 옛 시절이 그리웠지만 미안한 마음에 선뜻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싱가포르에서 결혼해 타지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떠난 죄책감에,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앙의 두려움까지 더해져 힘들게 지냈다더군요.
친구는 백방으로 제 연락처를 수소문하다 포기하고 아이를 낳은 뒤로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고 합니다. 자신으로 인해 아이마저 구원받지 못하면 어쩌나 해서였습니다. 불안감을 없애는 방법은 시온으로 돌아오는 길밖에 없었지만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싱가포르에서는 요원한 일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인터넷으로 설교를 비롯한 하나님의 교회 관련 영상을 시청하며 마음을 달래는 정도였지요.
그렇게 혼자 믿음의 줄타기를 하던 친구가 올해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용기를 내어 다시 시온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하철역에서 교회까지 30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갈까? 말까? 다음에 갈까?’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이면서요. 짧은 거리를 뱅뱅 돌아 겨우 교회 로비에 들어선 친구는 교회 식구들의 밝은 미소와 인사에 옛적의 그 따스함을 느끼고 안도했습니다. 들어갈 때 무거웠던 발걸음은 나오면서 가벼워졌고 그날 저녁 저와 전화 연결이 됐습니다.
카페에서 오랜만에 회포를 풀고 저희는 마침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어머니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관악교회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저희가 함께 믿음을 키워갔던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설 때부터 친구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시온을 나서는데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학생 때 친하게 지냈던 식구였습니다. 친구는 잠시 긴장하는 듯했습니다. 말없이 떠난 자신을 혹여나 원망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걱정이 무색하게 자매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친구를 따듯하게 안아주었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괜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친구는 표정이 환해졌습니다.
돌아온 안식일, 아이와 함께 시온에 온 친구는 새 생명으로 거듭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이제 하나님 만나는 거야.”
사랑하는 아이와 오전과 오후, 저녁 예배까지 드리며 정말 행복해하던 친구가 저에게 조용히 편지를 내밀었습니다.
“하나뿐인 친구이자 나를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해 준,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 윤정아!
돌고 돌아 이렇게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온 나를 따듯하게 받아준 너, 한걸음에 달려와 준 너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안한 마음도 크고.
내가 하나님을 애타게 찾은 건 순전히 힘들어서였지만 이런 못난 모습까지도 받아주시니 감사한 마음뿐이야. 나는 나약한 존재라 앞으로 어떤 신앙생활을 할지 몰라도 힘들 때마다 하나님이 잡아주실 거라 믿고 일어설 거야.
‘너는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 그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 불안했던 지난날들, 오늘에야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 같아. 고마워. 앞으로는 헤어지지 말자. 사랑해. 함께 천국 가자.”
친구는 지금 싱가포르 시온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외로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매일 어둡게 지내던 친구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본 친구의 남편은 “어메이징한 변화”라며 놀라워하더니 시온도 방문했답니다.
친구와 저는 아침이면 응원의 메시지를 나누고 밤이면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잠듭니다. 꿈만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어머니께서는 단 한 순간도 자녀를 잊지 않으신다’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잊을지언정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손을 잡고 계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본보여주신 대로 내 소중한 하늘 자매의 손을 꼭 붙잡으려 합니다. 또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함께 천국 가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