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Menu

전시회 톡톡 TalkTalk

미처 깨닫지 못한 묵묵한 사랑

2024.04953
  • 글자 크기



  • 반백 살이 훌쩍 넘도록 아버지에 대한 이렇다 할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는 한 집에 사는 존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밖에서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가족에겐 아니었던 아버지. 그래서였을까. 몇 해 전 아버지전을 관람했을 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바빠서, 멀어서, 몸이 안 좋아서, 남편이 같이 못 가서… 온갖 핑계를 대며 한동안 가지 않은 친정을 막냇동생 내외와 함께 찾았다. 못 본 새 엄마의 허리는 더 굽어진 것 같았고, 8년을 대상포진으로 고생 중인 아버지는 건강이 괜찮아 보였다.

    저녁을 먹고 둘러앉아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 엄마에게 불쑥 물었다.

    “엄마, 아버지는 남은 그렇게 잘 챙기면서 왜 엄마랑 우리한테는 안 그랬대? 엄마랑 함께한 추억은 많은데 아무리 더듬어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어. 남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나는 할 말이 없더라고.”

    엄마가 대답했다.

    “아버지가 너네한테 왜 해준 게 없어. 생선이 상 위에 올라오면 다섯 자식 돌아가며 무릎에 앉혀서 가시 다 발라 먹이고 너희 네 자매 마루에 앉혀 머리도 빗기고 땋아주고 그랬는데.”

    “정말? 진짜로? 아버지가 우리한테 그랬다고?”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 아버지가 표현을 잘 안 해서 그렇지 너네한테 잘했다.”

    엄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태 아버지를 오해한 셈이었다. 내 기억에 없더라도 우리 아버지 역시 자식을 사랑하는 여느 아버지들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한테 미안했다. 고마운 마음에 슬며시 아버지 손을 잡아드렸다.

    얼마 뒤, 지인과 함께 원주교회에서 열리고 있는 아버지전을 관람했다. 1관부터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전에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기에 나 스스로도 많이 놀랐다. 5관에서는 반역자가 된 아들 압살롬의 죽음으로 오열하는 다윗의 사연을 통해 배역한 자녀들로 인해 하늘 아버지께서 겪으신 아픔이 얼마나 컸을지 와닿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오해했던 어리석음을 육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영의 아버지께도 범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함께 전시회를 관람한 지인을 하늘 부모님께 인도하고 돌아오는 길, 영육 간 아버지께 효의 도리를 다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 묵묵한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더 보기
    뒤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