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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당신에게 감사함이란 무엇인가요?

2024.01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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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 월터 밴저슨 교수님

    붉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슬쩍 기운 해가 지평선에 제 뺨을 누이는, 온 지천이 황혼에 물들 때 그 풍요를 붉다고 표현하는 걸까요? 저는 평생 알 길이 없었습니다. 물론 아는 척 정도는 할 수 있었죠. 앞마당에서 키우는 산딸기가 붉은색이고, 가을 낙엽이 붉은색이고, 날붙이에 손이 베이면 스며 나오는 피가 붉은색이라고요. 저는 그렇게 외웠습니다. 아, 외우기 전에는 붉은색의 의미가 조금 달랐던 것 같기도 합니다. ‘트라우마’라고.


    제 머리꼭지가 어머니 허벅다리의 절반을 겨우 넘어설 즈음이었으니 아마 다섯 살 때였을 겁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 근처 마트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새로 발매된 로봇 장난감을 사주신다 하셨죠. 온기를 머금지 못한 볕이 시렸고 간밤에 내린 싸라기눈에 질펀해진 길을 걸어 어느새 어머니와 저는 마트 바로 앞 건널목 보도블록에 서 있었습니다.

    “제이콥, 신호등 불이 초록색일 때 건너야 한다.”

    어머니는 제 손을 앞뒤로 잘게 흔들며 말했습니다. 저는 건너편 신호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무엇을 보고 초록불이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제 눈에는 위아래에 있는 불빛 모두 비슷하게 보였거든요. 저는 곧바로 불나방처럼 횡단보도로 뛰어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집채만 한 덤프트럭 한 대가 저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습니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경적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거대한 괴물이 제 심장을 꽉 쥐어짜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가 제 목덜미를 잡고 뒤로 당기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겠지요.

    아스팔트 바닥에 내팽개쳐진 엉덩이를 어루만지기도 전에 오른쪽 뺨이 홧홧하게 달아올랐습니다. 코에서 뜨뜻한 뭔가가 흘러내렸습니다. 피였습니다. 턱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진 핏방울이 아스팔트에 짙은 녹색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참으로 억울했습니다. 저는 하라는 대로 초록불에 건넜는걸요. 그 후 제 눈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확히는 제 눈이 붉은색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요. 병원 진료 결과 ‘적색약’이라더군요. 정도가 심해 색맹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제가 평생 빨간색을 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고개를 모로 돌리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습니다. 아버지는 가라앉은 얼굴로 말없이 제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저는 녹색으로 보여도 사실은 붉은색인 것들을 외웠습니다. 수학 공식을 외우듯이요. 진짜 붉은색은 어떤 색일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괜찮았습니다. 불편하지 않았어요. 애초에 붉은색이 뭔지도 몰랐으니까요.

    다만, 그날 신호등 아래에서 흘린 코피는 제 마음 깊은 곳에 혈흔으로 남았습니다. 아직도 오른쪽 볼이 가끔 아려옵니다. 붉은색은 제게 그런 의미였습니다. 아득한 굉음이 제 온몸을 옥죄고 짓누르는 것, 건널목을 피하기 위해 부러 먼 길을 둘러 가는 것, 천둥처럼 울리던 어머니의 호통이 저를 향하는 것, 때 이른 새벽녘에 식은땀을 쏟으며 잠에서 깨는 것. 저에게 붉은색은 온통 폭력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 애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저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대신 일찍이 생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제가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소개로 들어간 회사에서 그녀를 처음 봤습니다.

    저는 멀대처럼 키만 크고 팔다리에 근육이 잘 붙지 않았습니다. 혈기 왕성한 나이임에도 제 뺨은 살이 오르지 않아 강파른 인상을 풍겼습니다. 고기를 멀리했던 까닭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채식주의자라는 말은 아닙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녹색으로 거무죽죽한 고깃덩어리를 보고 있으면 비위가 상했습니다. 친구 놈들이 게걸스럽게 접시를 비워내도 도저히 식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마른 몸 때문에 자신이 없었던 걸까요, 저는 그 애 앞에서 대단히 애송이처럼 굴었습니다.

    “편하게 에밀리라고 불러.”

    다행히 에밀리가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감히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한여름의 열기 때문에, 일렁이는 아지랑이 때문에 어지러울 뿐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심장이 너무나 세차게 뜀박질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맥박 소리를 들킬까 겁났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에밀리가 입꼬리를 끌어당겨 푸스스 웃었습니다. 그녀의 입술은 짙은 녹색이었습니다. 제가 붉은색을 볼 수 있었다면 분명 건강한 혈색이었을 터였습니다. 색을 보지 못해 아쉽다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에밀리는 그렇게 꽁꽁 언 땅에 핀 봄꽃처럼 제 안에서 서서히 피어났습니다. 저는 그녀를 만날 때마다 붉은색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했습니다. 붉은색은, 나란히 걷다가 우연히 손끝이 스쳤을 때, 따스한 눈빛이 서로에게 닿는 순간, 마음속 상처를 보듬는 때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르익은 마음의 종착지는 어디일까요. 저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반지 한 쌍을 준비했습니다. 꽃다발도 있어야 했기에 콧노래를 부르며 근처 꽃집에 들렀습니다. 에밀리에게 탐스러운 붉은 장미 한 다발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책에서 찾아보니 붉은 장미의 꽃말은 열렬한 사랑이라고 하더군요. 제 마음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빈손으로 가게를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붉은 장미’라고 적힌 팻말 위에는 탁한 녹색 빛의 장미 여러 송이가 병에 꽂혀 있었습니다. 나만 빼고 에밀리나 꽃집 직원, 저만치 벤치에 앉아 핫도그를 먹는 남자에게나 모두의 눈에 장미는 붉은색일 것이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저는 왜 장미를 살 수 없었을까요. 왜 에밀리의 손에 반지를 끼워줄 때 빈손이었을까요. 어째서 그녀의 눈가에 잔주름이 파일 때까지 꽃 한 송이 건네지 못했을까요.

    이 사이에 낀 육포 조각처럼 저를 떠나지 않던 의문은 턱 언저리가 거뭇한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풀렸습니다.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았을 때, 저는 붉은색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사는 다운타운 외곽을 따라 주욱 걸어가다 보면 큰 가로수 옆에 꽃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늘 생각하지만 아담한 크기의 꽃집은 이 동네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입에 풀칠하는 데만 급급하면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 내가 올해 몇 살이 되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거든요. 다들 숨 가쁘게 살다가 회색빛 도로가 퍼석한 낙엽으로 덮이기 시작하면 가을이 깊어 가는구나 할 뿐이지요. 이곳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얼기설기 터전을 이룬 동네입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 세상살이가 퍽 고단하여 등허리며 무릎이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이런 가난한 노동자들이 사는 마을에 아기자기한 꽃 가게라니요. 이질적입니다. 장사가 잘될 리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가게 주위를 지날 때마다 유리문 너머로 꽃구경을 하고는 했습니다. 꽃을 살 일도 없으면서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 부근을 지날 때 아내의 눈길이 항상 꽃 가게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한 날은 큰 결심을 했습니다. 아내의 생일 파티가 시작되기 삼십 분 전이어서 마음이 조급했습니다. 저는 꽃 가게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겨우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가게 내부는 찬 바람이 부는 바깥과 달리 따뜻한 기운이 맴돌았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제가 머플러를 풀어 팔에 걸칠 정도였으니까요. 저는 곧장 녹색 장미가 담긴 바구니 앞에 섰습니다.

    “이거 주세요.”

    “몇 송이 드릴까요?”

    “오, 오십 송이 포장해 주십시오.”

    출항을 준비하는 뱃사람처럼 비장한 목소리였습니다. 앞치마를 두른 젊은 아가씨는 작게 미소 짓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장미를 종이로 감쌌습니다. 장미색과 비슷한 녹색 종이가 보기 좋게 구겨졌습니다. 이내 제 손에 그럴싸한 장미 꽃다발이 들렸습니다.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손가락 끝이 뻣뻣하게 굳어 갔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아내에게 그 다발을 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나는 것은 아내의 입술이 부드럽게 호를 그린 장면입니다. 에밀리의 미소는 백열전구처럼 따뜻하고 환하게 빛났습니다. 그녀는 장미 꽃잎을 손으로 계속 어루만졌습니다. 그러다 제게 줄 것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에밀리는 부엌 찬장에서 반질거리는 종이 상자 하나를 꺼낸 뒤 제 팔 한쪽을 붙들고 집 밖으로 이끌었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알이 거무스름한 선글라스가 있었습니다.

    “이게 웬 거야? 오늘은 당신 생일이잖아.”

    “됐으니까 어서 껴봐.”

    저는 못 이기는 척 선글라스를 꼈습니다. 안경다리가 귓바퀴 바깥쪽에 걸리는 순간 저는 얼음 조각처럼 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와, 와, 이게, 이게…” 하고 탄성이 제멋대로 터져 나왔습니다.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에밀리의 입술은 붉은색이 아니었습니다. 저에게 붉은색이란 잔디의 녹음과 같은 색이었습니다. 그 색이 녹색으로 보여도 입술은 붉다, 이렇게 외워왔지요. 그러니까 제가 알던 붉은색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붉은색이 아니었어요. 난생처음 보는 낯선 빛깔이었습니다. 강렬하게 밀려드는 색채에 저는 망연해지고 말았습니다. 그 강렬함의 정체가 진짜 붉은색이라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눈을 계속 깜빡거리고 안경을 썼다가 벗었다가를 반복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세상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에밀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색약 보정 안경이야.”

    안경을 끼고 집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붉은색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릴 적 즐겨하던 보물찾기 같았습니다.

    유리병에 담긴 캔디가 붉었습니다. 키우는 앵무새의 주둥이가 빨갰습니다. 얼마 전 수리했던 지붕이 검붉었습니다. 썩기 시작한 사과의 엉덩이 부분이 불그죽죽했습니다. 에밀리의 두 뺨이 발그레했습니다. 붉은색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이리도 다양하다니, 왜 아내가 외출할 때 립스틱 색을 고르는 데 한참 걸리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시선은 에밀리가 안고 있는 꽃다발에 머물렀습니다. 새빨갰습니다. 온통 새빨갰습니다. 붉은 장미의 꽃말이 왜 열렬한 사랑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붉다는 건 사람의 시선을 붙드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수고스럽게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붉디붉은 색채 하나만으로 주체할 수 없이 강렬한 사랑을 증명해 줄 수 있을 만큼이요.

    제 마음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붉은색이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제야 저를 괴롭히던 의문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왜 사랑하는 아내에게 장미를 선물할 수 없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녹색 다발로는 제 마음의 만분지일도 전할 수 없었던 것이죠. 제 사랑은 잔잔한 열기를 띠고 있고, 향방 없이 날뛰는 생동감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넘치는 마음을 어떻게 그 죽은 색으로 전할 수 있겠습니까. 흐리멍텅한 색으로는 눈곱만치도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인걸요.

    “저 장미를 좀 봐….”

    저는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연신 감탄을 터트렸습니다. 옆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에밀리는 저를 바라보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이윽고 저와 에밀리는 낯선 색채가 드리운 다운타운을 계속 눈으로 좇아가며 이동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동네 구석에 있는 공터였습니다. 공원이라기에는 볼품없고, 공터라기에는 조금 넓은, 지평선이 멀리 보이는 탁 트인 장소였습니다. 에밀리를 허겁지겁 따라가던 제 발끝이 공터 안쪽에 다다랐을 때, 때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한 탈력을 느꼈습니다. 무력함과 형용할 수 없는 환희가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쳤습니다. 명치 부근에서 무언가 절절 끓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대로 장기가 망가지는 건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이때까지 제가 봐왔던 저녁녘은 그저 노란빛으로 옅게 물든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제 눈앞에는 붉은빛이 하늘을 죄 뒤덮고 있었습니다. 선명하다, 쨍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색이었습니다. 저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빛이었습니다. 제 볼을 타고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내렸습니다. 코피가 아니었습니다. 눈물이었습니다. 어느새 저는 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 광경 앞에서 그분의 존재를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그냥 생겼을 리 만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들여 빚은 작품 중 하나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다들 이런 세상을 매일 보고 산다는 건가요? 부족하게 살아도 남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너무 부러웠습니다. 이 다채로운 세계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습니다. 평생 안경을 벗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마 그 순간을, 그때의 감격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나중에 안경 상자에 동봉되어 있던 메시지 카드를 읽었습니다. 발신자 월터 밴저슨. 교수님께서 지원한 안경이라지요. 에밀리에게 물어보니 신문에서 색약 보정 안경의 홍보 광고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교수님의 메일로 제 이야기를 써서 보냈다고요. 그제야 두 달 전 에밀리가 티브이 앞에 앉아 뭔가를 끄적거리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교수님이 색약 환자의 사연을 수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이렇게 안경에 대한 후기와 감사 인사를 남깁니다.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 무엇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란 붉은색을 붉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겁내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품에 붉은 장미를 한 아름 안겨줄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찮다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고작 이것이 제 행복의 전부입니다. 이것만으로 저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차올라서, 감사를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집니다. 하루를 바쁘게만 사는 사람들에게, 붉은색을 붉게 보는 모든 사람에게, 월터 교수님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감사함이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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