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미숫가루를 탄 두유만 한 잔 마시고 나가던 남편이, 도시락 싸고 남은 달걀말이가 맛있어 보였는지 아침을 먹고 가겠다고 했다. 급하게 콩나물을 꺼내 손질하는데 엄지손가락 끝이 화끈거리고 쓰렸다. 며칠 전 멸치볶음에 사용할 멸치를 다듬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1kg 정도 되는 멸치를 다듬겠다며 야심만만하게 시작했으나 두 시간이 넘도록 고작 한 줌 정도만 손질했다.
“엄마, 멸치 손질해서 가니깐 멸치볶음 맛있게 해줘요.”
“오메, 집에 손질 다 해놓은 멸치 있으니 그냥 오니라. 고 서방 내일 도시락 싸줘야지.”
결국 엄마가 손질해 놓은 멸치로 만든 반찬을 받아 돌아왔다. 그 한 줌도 되지 않는 멸치를 손질하며 손가락 밑이 까진 것이다. 엄마가 만들어 준 멸치볶음으로 남편 도시락을 싸서 보낸 후 문득 생각했다.
‘엄마는 손끝이 아프지 않았을까?’
어릴 적부터 우리 집 밥상에는 콩나물무침과 멸치볶음이 자주 올라왔다. 엄마는 콩나물 머리를 먹지 않는 나를 위해 콩나물 머리를 하나하나 떼어 나물을 무쳤다. 멸치도 일일이 다듬어 볶아주셨다. 내가 수십 년을 사는 동안 항상 콩나물 머리를 떼고 멸치를 다듬었던 엄마의 손가락 끝은 얼마나 아프고 시리셨을까. 마디마디 굵고 투박하지만 손톱에 봉숭아 물을 곱게 물들인 엄마의 손이 그려졌다.
평소 손톱 밑이 들떠 아플 때마다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곤 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손톱이 뽑히는 고문에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는데 이쯤이야.”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빙긋 웃기까지 했다. 그렇게 거창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서 정작 가장 가까이에서 평생 나를 위해 희생하신 엄마의 사랑은 돌아보지 못했다.
“배 여사님, 그동안 멸치 다듬느라 고생 많았어요. 손 많이 아팠겠어요.”
“그런 줄 알면 앞으로는 다 다듬어 가져오니라.”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주섬주섬 반찬을 담는 엄마. 나는 또 엄마의 사랑을 챙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