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유년 시절을 누나와 함께 외롭게 보냈습니다. 제게 울타리가 되어줄 안정적인 가정을 갖기를 바라다 성인이 되어 아내를 만나고 딸아이를 얻었습니다. 꿈꾸던 행복과 밝은 미래가 손에 잡힐 듯했습니다.
하지만 맞벌이와 육아는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아내의 마음 한 번 제대로 살펴주지 못해 다툼이 잦았고, 육아만으로도 충분히 힘들 아내를 배려하고 공감하기보다 탓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부딪치기 싫어서 대화마저 피하다 보니 아내와의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져 갔습니다.
그 무렵 아내가 처가 식구들과 하나님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같이 교회를 다니자는 아내의 말에 못 이기는 척 한 달에 두어 번 교회를 가기는 했습니다. 물론 마음의 문은 굳게 걸어 잠근 채였습니다. 늘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다닌 세월이 8년 가까이 됩니다.
사실 아내에게 서운한 것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웃음기 없는 모습으로 저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내도 제게 섭섭한 부분이 많았을 테고, 그런 점이 한순간에 사라지지는 않았을 테지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아내가 미소로 상냥하게 대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아내는 신앙생활을 할수록 점점 달라졌습니다. 저를 이해해 주고 제 마음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었습니다. 언쟁이 생기더라도 차분히 대화를 시도하고, 다툰 후에는 먼저 다가와 주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저는 묵은 감정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갔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내는 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시온에서 배운 것을 실천했다고 합니다. 사랑을 받는 것도, 사랑을 주는 것도 서투른 저에게 아내는 어머니의 사랑을 실천하며 하늘 사랑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늘 어머니께서 아내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알게 해주시고, 제 영혼을 한시도 포기하지 않고 살펴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굳게 닫혀 있던 마음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열리니 신기하게도 말씀이 귀에 들어왔고, 매번 듣던 말씀도 새롭게 들렸습니다. 깨달음도 생기면서 천국 소망이 서서히 자라났습니다.
삼일 예배만 지키던 저에게 아내는 안식일을 지키면 어떻겠냐고 권했습니다. 업무상 토요일이 가장 바쁜 날이라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복잡하고 염려가 됐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안식일을 지키고는 싶었지만 토요일에 쉬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 같았으니까요.
고민하는 순간마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은 든든한 제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드리는 방법을 알려주며 제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함께 고민해 주었습니다. 결국 가족들의 지원과 아버지 어머니 은혜 속에 토요일에는 일을 쉬고 안식일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 선택은 더 큰 축복과 은혜로 이어졌습니다.
안식일 축복을 받은 후 때마침 말씀 축제가 열렸습니다.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 진리 발표를 하면서 진리에 대한 확신은 점점 커졌습니다. 자신감도 얻으면서 내성적이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집과 일터, 시온 어디서든 기쁨과 평온함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꿈꿔왔던 행복한 가정이 그렇게 하나님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행복해질수록 하나밖에 없는 누나가 생각났습니다. 누나는 진리는 영접했지만 매형을 의식하느라 규례를 잘 지키지 못했습니다. 누나도 나처럼 하나님 안에서 위로받고 매형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매형에게 성경 말씀을 전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매형을 위해 어머니께 기도드리면서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저희의 진심을 조금씩 전했습니다. 시온 식구들의 연합 기도가 더해지자 매형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늦은 밤에 일이 끝나지만, 매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만 되면 아내와 함께 곧장 매형에게 달려가 교회 자랑도 하고 말씀 살펴보기를 권했습니다. 매형은 제가 말씀을 알려준다는 게 신기했는지 성경 말씀을 들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말씀을 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말씀 축제 기간 준비한 대로 매형에게 담대하게 진리 말씀을 전했습니다. 매형은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면서도 모친이 불교 신자라며 침례만큼은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마침 다가온 절기 기간, 매형의 영혼을 위해 새벽 저녁으로 기도드렸습니다. 곧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얼마 후, 서울에 거주하는 매형이 안식일에 인천 저희 집으로 놀러 온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대접할 음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했고, 저는 하늘 어머니께 간절한 마음으로 서신을 올렸습니다.
안식일 당일, 어머니께서 응답해 주셔서 모든 시간과 상황을 다 예비하시고 매형의 마음 문을 활짝 열어두셨습니다. 매형은 새 생명의 축복과 더불어 안식일의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이후로도 매형은 한 달에 한 번씩 누나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매형도 누나도 굳건한 믿음으로 성장하려면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아 있겠지요. 그 또한 기도드린다면 아버지 어머니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매형을 시온으로 인도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한 영혼을 인도하는 데도 이렇게 애가 타고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데 하늘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그 수많은 자녀들을 다 살피시는지요. 진정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너무나 부족한 제가 식구를 돌보는 축복을 허락받고 어떻게 식구들을 살필까 염려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 이미 식구들을 돌보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인내로 기다려준 아내와 가족들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시온 식구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사랑을 받는 일, 받은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일.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예전의 저에게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뜬구름 같고 잡을 수 없는 무지개 같은 것이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부지런히 그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이 행복을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