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맨날 언니가 다 해? 그런다고 누가 알아준대? 언니가 착하니까 자꾸 이용당하는 거야. 난 언니가 좀 똑똑해졌으면 좋겠어!”
마음에 있는 말은 꼭 하고야 마는 나에게, 작은언니는 답답함 그 자체였다. 누가 필요하다고 하면 입고 있던 옷도 선뜻 벗어 주고, 없는 것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작은언니였다. 그래서였을까? 집에서도 잡다한 일은 작은언니가 도맡아 했다. 큰언니는 집안의 수재, 가문의 영광이라 할 만큼 공부를 잘해서 애당초 부모님은 물론 친척들에게도 귀한 대접을 받았고, 눈치가 빠른 나는 힘든 일을 작은언니에게 몽땅 떠맡기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
우리 집은 몹시 가난했다. 5남매를 다 대학에 보내자면 부모님이 일을 더 해야만 했다. 동네 사람들은 형편도 어려운데 딸들을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낸다며 손가락질했지만 부모님은 빚을 얻더라도 대학만큼은 꼭 보낼 테니 걱정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경제 사정까지 알 턱이 없던 나는 그 말씀만 믿었다. 하지만 작은언니는 아니었다. 집안일은 물론 농사일까지 도와드리다 보니 부모님의 어려운 사정을 속속들이 알았다. 작은언니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친척이 소개한 취직 자리가 있는 창원으로 간다고 했다. 항상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언니가 떠난다고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집안일이 내 차지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작은언니를 못 가게 말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걱정 마, 언니가 돈 많이 벌면 용돈도 주고 예쁜 옷도 많이 사줄게. 아빠는 눈이 잘 안 보이시니까 뭐 찾으시면 바로 찾아드려. 엄마는 허리 아프니까 무거운 거 함부로 들지 않게 네가 도와드리고.”
끝내 작은언니는 창원으로 갔다. 내가 수능을 마치고 혼자 창원에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걱정하면서도 차표와 용돈을 쥐여주셨다. 창원으로 간 작은언니를 찾아가지 못했던 부모님은 나를 통해서라도 소식을 듣고 싶어 하셨다. 커리어우먼이 되었을 언니 생각에 창원으로 가는 내내 피곤한 줄도 몰랐다. 직원에게 그렇게 많은 월급을 주는 회사는 또 얼마나 크고 대단할까 싶어서 언니에게 회사 구경도 시켜달라고 할 참이었다.
작은언니는 터미널까지 마중을 나왔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평상복 차림이었는데 아주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나를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겨주었다. 언니는 맛있는 걸 해주겠다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에 오니 낯선 중년 부부와 아이들이 인사를 했다.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언니 방으로 들어갔다. 언니의 방은 너무 좁고 초라했다.
“언니 왜 여기서 살아? 혼자 자취하는 거 아니었어?”
“그게… 어, 여기서 살면 집세를 아낄 수 있거든. 다들 좋은 분이셔. 애들은 또 얼마나 예쁜데…. 하나도 안 불편해. 오히려 내가 편하지. 방만 세 들어 사는 거야.”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작은언니는 회사에 취직한 게 아니라 입주 가사 도우미 일을 하면서 동생들 학비를 보내줬었다.
2년 후, 언니가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언니를 부둥켜안고 펑펑 우셨다. 자식 고생시킨 미안함에 야간 대학이라도 가라며 오열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언니는 집에 온 것만으로도 좋다며 잠시도 쉬지 않고 논밭으로 다니면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다. 아빠 안경도 좋은 것으로 맞춰드리고, 저녁에는 엄마 어깨도 주물러드렸다. 밤에는 아예 엄마를 끌어안고 잤다.
그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작은언니는 다시 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다녔다. 아빠의 건강이 좋지 않았고 엄마도 예전처럼 일할 수 없어서 집 근처로 일자리를 알아본다고 했다.
하루는 작은언니가 짐 싸는 것을 도와달라고 해서 거들다가 언니가 중학생 때 쓴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12월 5일
제목: 하나님께 드리는 편지
하나님, 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집은 어떤지 궁금해요. 엄청 호화롭고 멋지고 크겠죠?
천사들이 항상 춤을 추고 늘 기쁨만 있는 곳에서 얼마나 좋으실까요?
하나님은 멋진 부인을 두셨겠죠? 아내분과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겠네요.
…
하나님, 그런데 저희 집은요, 너무 가난해요. 아빠는 2급 시각장애인이고, 엄마는 허리와 위가 많이 아파요.
저희 집은 너무 초라하고 작고요. 하나님은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하늘나라에 계시는데, 저는 왜 여기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요?
언니의 일기장을 보고 한참 울었다. 언니는 힘들어도 내색 한번 안 하고 부모님을 돕고 동생들을 돌보는데 나는 너무 철이 없고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시간이 흘러 참 하나님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작은언니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는 생각을 해서였을까? 언니는 순한 양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긴 시간 동안 가족을 위해 고생한 언니에게 뜻깊은 선물을 한 것 같아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언니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함께하면 쉬울 것을 그동안 언니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웠던 것 같다. 하지만 언니는 오늘도 이렇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