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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향기

한국을 경유해서 천국으로

20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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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이탈리아 가서 멋들어지게 살아야지.’

    어린 시절 이탈리아를 동경했습니다. 제 고향인 스리랑카의 아름다운 해안 도시 마타라에는 이탈리아 사람이 서양식 건물을 짓고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이국적인 건물과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보노라면, 가본 적 없는 이탈리아가 머릿속에서 천국처럼 아름답게 그려졌습니다.

    성인이 된 뒤, 한국에서 바짝 돈을 모아 이탈리아로 이민 갈 계획으로 한국행을 결정했습니다. 부친은 철모르는 저를 극구 말렸습니다. 돈 벌기 어려운 나라에 굳이 왜 가서 고생하려느냐면서요. 당시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막 넘긴 상황이긴 했지만 젊은 저는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금방 돌아오겠다고 부친을 설득해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정말 몰랐습니다. 그때껏 겪지 못한 고생길이 한국에서 열릴 줄을요.

    말은 안 통하고,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돈이라도 잘 벌면 좋으련만 자꾸만 상황이 꼬이고 안 좋은 일도 연달아 일어났습니다. 잠깐 고생하면 부자가 되어 살맛 나는 미래를 맞이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7년을 일해도 당장 먹고살기 빠듯했습니다.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하는 입장에서 제 앞가림도 못하는 데다 어디 마음 둘 곳도, 속내를 털어놓을 사람도 없어 외롭고 절망스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은 존재가 예수님이었습니다. 일평생 불교를 믿었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잘 몰랐지만 막연하게나마 예수님이라면 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까 해서 그 이름을 부르며 제발 도와달라고,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즈음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회사 여직원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틀림없었습니다. 제게 생명의 소식을 전해주었으니까요. 사실 처음에는 저를 교회에 초대하겠다기에 따라나선 것뿐이었습니다. 이후로 저녁에 퇴근하고 교회 분들을 만나 성경 말씀을 배웠습니다. 가르치는 분이 영어로 진리를 알려주면 제가 신할리즈어 성경 구절을 찾아 읽는 식이었습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할아버지가 성경은 만져서도 안 되고 집에 들이지도 말라고 제가 어릴 때부터 신신당부하셨던 터라 처음 접하는 성경 말씀이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거듭할수록 성경에 기록된 진리들이 하나씩 보였고,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공부하고 나니 하나님의 존재를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새 언약이야말로 우리 인생이 반드시 찾아야 할 구원의 진리라는 것도요.

    그제야 동료가 저를 교회로 초대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언젠가 회사에서 마주쳤을 때,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심란해 앓는 소리로 “머리가 아파요”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런 제가 안쓰러워 하나님께 위로와 소망을 얻길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마음을 써준 동료가 고마웠습니다.

    시온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동료의 바람대로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천국처럼 여겼던 이탈리아가 아니라 그곳에 가기 위한 경유지 정도로 여겼던 한국에서, 비할 데 없는 진정한 천국을 찾았고 그 천국에 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알았으니까요. 외국인인 제가 낯설었을 텐데도 친근하게 다가와준 시온 식구들 덕분에 타국에 사는 외로움도 덜고 한국어 실력도 날로 좋아졌습니다. 제게 구원의 소식을 전해준 동료와 결혼까지 하면서 괴로움으로 얼룩졌던 삶이 안정되었으니 아버지 어머니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받은 축복에 보답하려면 하나님의 일에 온 힘을 다해도 부족한데 현실은 제 믿음 하나 지키기도 벅찼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전기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우는 입장인 데다가 공정 기한에 맞추려면 주말에도 출근해야 해서 규례를 온전히 지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양해를 구한들 현장에서 받아주지도 않을 것 같았고 혹시나 일이 끊겨 생계가 곤란해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면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기도와 고민 끝에 하나님을 믿고 평일 저녁에 남아서 다음 날 할 일을 미리미리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날마다 늦게까지 일하니 집에 오면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안식일을 지킬 수 있어 감사하고 뿌듯했습니다. 현장에서 일 처리가 빠르고 완벽하다는 신뢰가 쌓이면서, 나중에는 근무일을 조정해 규례를 걱정 없이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본국 가족들의 형편도 눈에 띄게 나아져 제 마음의 부담을 덜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복이 임한다는 가르침처럼, 제가 들인 수고에 비해 과분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가장으로서 가정을 건사하고, 하나님의 규례를 꼬박꼬박 지키고 있으니 이만하면 잘하고 있지 싶었습니다. 제 착각은 약 2년 전 시온 행사에서 완전히 깨졌습니다. 옥천고앤컴연수원에서 열리는 행사에 종종 참여했지만 그날은 느끼는 바가 달랐습니다. 잃은 자녀를 찾으시랴 품 안의 아들딸을 돌보시랴 쉴 새도, 눈물 마를 날도 없으신 하늘 어머니의 모습은 많이 상해 있었습니다. 그제야 죄 없으신 어머니께서 저 때문에 당하시는 고통이 보였습니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온갖 축복과 행복을 다 누렸으면서 어머니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드렸는지, 나는 수시로 육신의 고향이 떠올라 슬퍼하면서 어머니께서 얼마나 하늘 본향을 그리워하실지는 왜 생각 못 했는지…. 어머니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 하루빨리 아니, 한시라도 빨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습니다.

    제가 할 수 있고 진즉에 해야 했던 것, 바로 전도였습니다. 그동안 주변에 신앙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했지 지인들을 시온으로 인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전도는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여기며 한 걸음 물러서 있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전하려니 어색했지만 일터에서 만난 지인 한 명 한 명에게 진리를 알렸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순수하게 시온에 와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후배 몇 명은 새 생명의 축복을 받고 난 후 제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형님을 신뢰하니까 따라온 거예요.”

    직접 말씀을 전하지 않는 중에도 시온에서 배운 어머니 교훈을 일터에서 실천해 온 노력들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정말 기뻤습니다. 공사 현장은 위험하고 급박한 만큼 사람들의 말투와 행동이 다소 거칩니다. 일도 힘든데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어머니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믿는 진리의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으려면 제가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 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만나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커피 한 잔을 타더라도 동료에게 먼저 건넸습니다. 누군가 실수하면 욱하기보다 “괜찮아요. 제가 내일 마저 할게요”라며 덮어주고요.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덤이었습니다. 외국인이라고 경계하며 무시하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제게 예의를 지켰습니다. 자존심 상하고 답답한 상황을 웃어넘기기 힘든 적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그 수고와 노력이 여러 영혼을 시온으로 인도하는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언제나 모든 상황과 여건을 열어주시고, 많은 사람 중에 뛰어나게 해주신다는 확실한 약속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겼습니다.

    전도의 기쁨과 보람을 조금씩 알아가던 무렵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콜롬비아 시온 건설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광주권 시온 식구들은 콜롬비아 선교를 꾸준히 지원하고 있었고, 그만큼 현지에서 찾은 식구가 많아 큰 성전이 절실했습니다. 덥고 추운 건설 현장에서 밤낮으로 배운 기술이 복음에도 쓰일 수 있음을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기술을 배워 먹고살게 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시온 건설이라는 특별한 복까지 받을 수 있다니 지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틀을 꼬박 걸려 도착한 콜롬비아 보고타의 엔가티바. 주어진 시간이 한 달뿐이라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현지 사정으로 공사를 당장 시작할 수 없는 겁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기만 하면 시온 건설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 알았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속이 타들어갔습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다급해져 나중에는 제 감정을 숨기기 힘들었습니다. 공사를 할 수 없다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다른 식구들도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텐데 “우리 조금만 인내해요”라며 저를 다독였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놓치고 있던 것이 ‘인내’였고, 저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저 자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이뤄지는 것인데 제가 뭐라도 하는 것처럼 답답해했으니까요.

    긴긴 인내의 시간을 거쳐 2주 만에, 성전이 될 건물의 열쇠를 얻었습니다. 한 달을 예상했던 작업을 2주 만에 완료해야 하는 상황이라 쉬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사에 매진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식구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습니다. 팀원 모두 한마음으로 움직여 기한 안에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완공된 성전을 둘러보며 저희도, 현지 식구들도 얼마나 활짝 웃었는지요.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 일에는 열정뿐 아니라 순종과 인내가 필요함을 실감했습니다.

    공사가 끝난 저녁이나 예배를 마친 뒤에 짬짬이 현지 식구들과 함께 전도한 일 또한 감동이었습니다. 몇 차례 전도에 나서면서 현지 식구들의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하늘 어머니를 온 정성을 다해 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영혼의 어머니께서 계신다, 어머니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셨다고요.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꼭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소식이기에 식구들은 생계를 위해 바쁘게 일하면서도 틈만 나면 전도에 나섰습니다. 게다가 어찌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규례를 소중히 여기는지, 비가 오는 날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오느라 몸이 흠뻑 젖어도 항상 밝은 모습으로 시온에 들어왔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기 사명을 다하는 콜롬비아 식구들의 모습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그 식구들을 따라 저도 부족한 언어 솜씨로 어머니를 담대히 전하면서 많은 결실을 거뒀습니다. 참으로 새롭고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지인들에게만 전하던 진리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기가 부담스럽고 두려웠습니다. 지금은 부담과 두려움이 없습니다. 혼자 알고 있기에는 이 복음의 가치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크고 깊으니까요. 제가 받은 넘치는 사랑을 보다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습니다.

    돌이켜 보면, 받은 축복에 비해 깨달음이 너무 더뎠습니다. 규례를 소중히 지키는 것도 힘겨워했고, 복음의 가치를 깨닫기까지도 오래 걸렸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제 아주 작은 정성을 크게 여기셔서 상황마다 순간마다 깨달음과 은혜를 더해 주셨습니다.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죽은 것과 다름없던 제 삶에 생명의 빛을 비춰주시고, 제가 거듭나기를 길이 기다려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저 역시 그 사랑을 힘을 다해 전하고 실천하리라 다짐합니다. 이 다짐이 흐려지지 않도록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지금껏 허락하신 말씀과 깨달음을 늘 되새기며 복음에 헌신하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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