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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향기

어머니를 생각하면 할 수 있습니다

2025.10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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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 성인이 되어 시작한 군 생활이 어느덧 33년, 민간인보다 군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더 깁니다. 오랜 부대 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같은 정신은 일상에서도 지표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직업 군인이 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아내를 일찍 만나 빨리 결혼한 만큼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지가 저를 군대로 이끌었지요. 병사로 복무하다 고민 끝에 부사관을 지원했습니다.

    뜻밖에도 군인이라는 직업은 제 성격과 잘 맞았습니다. 모든 것을 규정과 방침에 의거해 판단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원인과 결과를 규정에 대입하면 결론이 명확했습니다.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는 결과로 잘잘못을 따져 규정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규정대로 징계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혀 없었습니다. 상대의 말을 들을 줄도, 그 마음을 헤아릴 줄도 몰랐습니다. 후배와 부대원들에게 저는 타협의 여지가 없고 ‘피도 눈물도 없는’ 선배이자 간부였습니다. 돌아보면 그런 저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상처받은 사람이 주변에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20년 넘도록 제 행동이 최선이라 여기며 살았습니다.

    신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여 년 전부터 하나님의 교회에 다닌 아내는 가족이 함께 신앙생활 하기를 바랐지만 저는 교회에 관해서라면 말 한마디 못 꺼내게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죽음을 두려워했던 터라 오히려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진리를 영접한 아내를 곁에 두고 이 교회 저 교회 기웃대며 헤매던 저는 개신교 한 교단에 정착했습니다. 그곳에 진리가 있다고 믿으며 아내 말은 더더욱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를 보며 아내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요. 포기하지 않고 제게 말씀 들어보기를 권하는 말을 듣다못해 하루는 아내에게 목사님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말씀에 관심이 생겨서가 아니었습니다. 오류를 집어내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만들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제가 하려는 말을 종이에 일일이 적어놓고 하나님의 교회 목사님을 맞았는데 상황은 제 예상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목사님이 보여준 성경 한 구절로 모든 것이 ‘탁’ 깨졌습니다. 바로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분명 읽었던 구절인데 전에는 그냥 흘러가는 글귀였고 ‘안식일’이라는 단어를 인식하지조차 못했습니다. 깜짝 놀라 반박은커녕 입도 뗄 수 없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살필수록 요한계시록의 ‘성령과 신부’도, 갈라디아서의 ‘우리 어머니’도 보였습니다. 더 이상 진리를 부인할 수 없어 하나님의 교회에서 새 생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당시 복무지였던 진도에서 시온이 있는 광주까지는 차로 두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퇴근하면 날마다 시온에 가서 성경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진리를 너무 알고 싶어, 시온으로 달려가는 길이 지척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1년간 진리에 관한 지식을 쌓았습니다.

    그러던 중 하늘 어머니의 사랑과 고통이 가슴 깊이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일평생 우리에게 한없이 사랑을 주시건만 그 사랑을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한 자녀로 인해 눈물 흘리시고, 아직 당신 품에 돌아오지 못한 자녀들 때문에 또 눈물을 흘리십니다. 시온에 인도된 자녀들을 보면 기쁘기도 하시겠지만, 어머니 마음 한편에 슬픔과 고통이 늘 자리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머니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되면서 주위의 영혼을 인도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어머니께 기쁨을 드리고 싶었고 어머니께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사랑을 전하고 실천해야 했는데 이때까지의 제 삶과 가치관을 전면 수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전의 저는 융통성도, 배려심도 없었고 상대를 생각할 줄도 몰랐습니다. 병사가 물을 가져다줘도, 사격훈련에서 만점을 맞아도 ‘고맙다, 잘했다’ 같은 인사나 칭찬 한마디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부하나 후배가 식수를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고, 군인이 영점을 제대로 잡고 사격하는 것은 본분에 마땅한 일이니까요.

    그랬던 제가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기 시작했습니다. 할 일도 많은데 저를 위해 물을 떠다 준 수고와, 군대라는 낯설고 어색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훈련해 좋은 성과를 낸 노력을 인정하게 됐지요. 예전에는 무조건 상대를 내 눈높이까지 끌어올리려 했다면 이제는 제가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게 된 것 같습니다. 항상 자녀의 입장을 고려하며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시고 자녀의 아픔을 보듬어주시는 어머니를 닮아가려 애쓴 결과입니다. 어머니 사랑을 깨닫기 전의 저였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할뿐더러 바뀌려는 생각조차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 순간 이 상황에서 어머니시라면 어떻게 하셨을지를 생각하면 제 성향과 습관을 고집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바뀌어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을 하려니 처음에는 낯이 뜨거웠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저를 낯설어하고 어색해했습니다.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몇 년 동안 꾸준히 노력하며 성격도, 말투도 달라지고 나서야 저를 대하는 주변의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경 쓰이고 머리 아픈 일도 많았습니다. 세상일이 다 제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사실, 타인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칼로 자르듯이 오직 규정과 방침대로 일을 처리하는 편이 저는 더 편합니다. 제가 손해 볼 일도 없고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 상황에서 마음이 편하실지 생각하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상대가 실수하더라도 왜 그런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판단했을지 고려하면 무조건 다그치는 것보다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잘못을 조목조목 밝히고 징계하는 것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것이 개인과 조직에 더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차츰 깨달았습니다. 규정과 방침을 준수하면서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고 마음은 더 훈훈해졌습니다. 이제는 더운 날 누가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물 마셨어? 안 마셨으면 먼저 마셔. 챙겨줘서 고맙다.”

    부드러운 말, 배려하는 말, 칭찬하는 말, 감사하는 말 등 어머니 사랑이 담긴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려 노력하니 언제부턴가 전역하는 병사들 사이에서 제가 ‘우리들 마음을 헤아려주는 간부, 편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무뚝뚝하던 병사가 전역할 때 찾아와 “행보관님, 감사했습니다” 하고 인사했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저를 통해 전달된 것 같아 기뻤고 감사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사랑이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그런 인사를 받을 일도 없었겠지요.

    제가 조금씩 달라지는 동안, 감사하게도 주위의 많은 영혼이 마음을 열고 시온으로 나아와 새 생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진도에서 근무할 때는 부대원 두 명이 진리를 영접했고, 지금 복무하는 곳에서도 여럿이 구원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오랜 시간 아내의 신앙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장인 장모님도 계십니다. 매주 처가에 가서 일손을 돕는 등 달라진 제 말과 행동을 보고 두 분은 왜 그러냐며 어리둥절해하셨습니다. 사위가 딸이 다니는 교회에 다니게 됐다는 것을 아셨을 때는 아무 말 하지 않으시더니 조금씩 마음이 열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저는 현재 제 삶이 참 좋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 너무 큰 사랑을 받아서 가슴이 벅차고, 소중한 사람들과 시온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이 늘 마음속에 가득합니다. 이제 2년 정도 남은 군 생활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누리는 축복과 기쁨을 나누려 합니다.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돌이키기가 어려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갑자기 변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지론이었지만 이미 저 자신이 변화를 경험했고 덩달아 주위 사람들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어머니 사랑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그 사랑을 더 열심히 실천하며 전하고 싶기에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물음을 오늘도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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