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 육십, 남들은 은퇴하고 노후를 계획하느라 근심이 많다던데 저는 행복 전성기를 누리는 기분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이렇게 즐거운 날도 오는구나 새삼 깨달으면서요. 낙이랄 것 없이 ‘사는 게 다 그렇지’ 하며 상심하던 날들을 생각하면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변화입니다.
젊었을 적에는 고생 모르고 살다 40대 들어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다 내려놓고 싶을 만큼 삶을 뒤흔드는 시련 속에 힘겨운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죽어라 일해도 빛이라고는 안 보이더군요. 어떻게 지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깜깜한 터널을 지나 눈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했을 때는 15년 정도 흘러 있었습니다.
긴장이 풀리고 나니 공허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유흥을 즐기고, 혼자 조용히 여행을 다녀봐도 가슴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쉽게 욱하는 성격 탓에 사고도 여러 번 치면서, 뜻대로 순탄히 흘러가지 않는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일생일대 고민의 해답을 동네 미용실에서 얻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종종 가던 미용실의 원장님이 하나님의 교회에 다니는 분이었습니다. 종교에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잊을 만하면 들리는 세상 교회들의 부정적인 소식에 혀를 차던 저였기에 성경 말씀을 들어보라는 원장님의 권유를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교회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거절이 세 번 정도 반복되었을 즈음 저도 모르게 원장님이 전하는 성경 이야기에 말을 보태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제가 신기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자녀라 그 음성을 들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 처음 가게 된 계기는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 관람이었습니다. 거부감은 여전했지만 ‘어머니’라는 단어에 몸이 이끌렸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흔히 접하는 평범한 이야기였는데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고생뿐이었던 세월을 아늑한 어머니 품에서 위로받듯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처음으로 성경을 제대로 살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씀과 여러 근거를 확인하며 솔직히 충격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만든 가상의 존재요 성경도 누군가가 지어낸 책이라 여겼으니까요. 제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이 우리 영혼을 낳아주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씀이 순리에 맞았고, 그 따뜻한 품에서 힘을 얻고 싶은 바람도 생겨 바로 새 생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신앙과 거리가 멀던 제가 교회를 다닌다는 자체가 어색하면서 신기했습니다. 첫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성경을 살피는 성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렇게까지 성경을 보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공부해 보니 알겠더군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의 연속이긴 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신 구원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출발한 신앙생활인 만큼 맹목적으로 다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여겨졌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혼자 분량을 정해 집에서 성경을 들여다보고, 출근길에는 차에서 설교 말씀을 들었습니다. 낯설고 어려웠던 말씀이 듣고 또 들으니 조금씩 머리에,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세계 역사와 만물의 이치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알려주는 진리가 경이로웠고, 하나하나 맞아떨어지는 하나님의 예언에 속이 다 시원했습니다. 비로소 하늘 아버지 어머니를 제 영혼의 부모님으로 확실히 깨달은 순간에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나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온갖 고난을 다 당하셨다는 사실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저 잘난 맛에 떵떵거리며 하늘 부모님을 외면하고 지냈으니까요.
성경에서 보던,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유월절 예식을 지켰을 때는 가슴이 벅찼습니다. 자녀가 회개하고 구원 얻기를 간절히 원하셨던 아버지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이 헤아려지면서 나도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형제자매님들처럼 성경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당당히 진리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성구도 척척 말하면서요. 의욕만큼 몸과 머리가 따라주지 않아 결심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때맞게 용기를 주는 설교 말씀과 앞선 식구와의 공부를 통해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 무렵 한 집사님을 따라 전도에 나섰습니다. 준비한 말씀을 십분 펼쳐보일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집사님 뒤만 졸졸 쫓아다녔습니다. 용기 내지 못하는 저 자신이 답답했습니다. ‘이 나이 먹고 못할 일이 뭐가 있나, 하나님만 의지하면 되잖아’라고 속으로 되뇌며 혼자 전도에 나섰습니다. 처음이 어렵지 막상 한 번, 두 번 전하고 보니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세상에 진리를 전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동시에 기나긴 세월 홀로 전도하셨을 아버지 어머니의 노고가 조금은 와닿았습니다. 당신의 피로 우리 죄를 사해주시는 것도 부족해, 깨닫지 못한 자녀를 찾으려 방방곡곡 다니셨을 아버지 어머니를 떠올리면 죄스럽습니다.
복음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가는 사이 제 성품도 많이 변했습니다. 이전의 저는 성격이 다혈질에 대쪽 같고 고지식해서 주변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 기준에 맞지 않으면 일단 싸우고 봤습니다. 시온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던 걱정이 무색하게, 한결같이 웃어주고 챙겨주는 식구들의 분위기에 어느새 저도 녹아든 듯합니다. 아버지 어머니를 닮은 식구들이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고, 곁을 주는 법을 몰랐던 제가 식구들과 있으면 편안했습니다.
작년 말에는 ‘새 성도 환영회’가 열려 식구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런 환대는 처음이라 쑥스러우면서도 천사 날개를 단 듯 행복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계시는 울타리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잘 지내고 있다고 확인받은 것 같아 그저 기뻤습니다.
짧은 시간 겪은 큰 변화에 혼자 놀라기도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항상 저와 함께하시는 기분이 들어 혼자 웃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절기를 지키고 나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예전에는 인생의 경주에서 뒤떨어진 것처럼 불안하고, 사회에서 자리 잡고 잘 먹고 잘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가장 확실하고 의미 있는 인생의 목적을 찾은 후 하루하루 복되게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하늘에서도, 이 땅에서도 지은 죄가 많아 면목 없지만 하나님께 나아오고 나니 인생이 참 행복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인의 회개를 그토록 바라셨나 봅니다. 한 자녀가 회개하기까지 겪으실 고생은 생각하지 않으실 만큼 말입니다. 하늘 부모님께 받는 축복을 생각하면 이런 행복을 저만 누릴 수 없습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뭇 영혼을 회개시키는 일에 동행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늘 부모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자 제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