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mark Menu
은혜의 울타리

은행 열매

2026.0137
  • 글자 크기



  • 거리에 은행 냄새가 풍기면 가을이 왔다는 직감이 듭니다.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는 짧디짧은 가을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들 피하기 바쁜 은행나무 열매를 주워 손수 껍질을 까고 알맹이를 볶아서 우리 가족 입에 넣어주던 아빠입니다.

    은행은 냄새가 심하지만 몸에 좋은 효능이 있습니다. 기관지에 좋고 혈액 순환과 소화 기능 개선에도 좋지요. 그 때문에 가을이 되면 온 집 안에 은행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은행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도 않았습니다. 고약한 냄새라며 싫어하는 우리를 위해 아빠는 베란다에서 문을 닫고 혼자서 묵묵히 은행 껍질을 깠습니다. 냄새나고 손도 많이 가는데 번거로운 일을 자처하는 아빠를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은 아빠가 돌아가시고 제가 성인이 된 이후입니다. 시중에 손질되어 파는 은행 중에는 외국산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아빠는 당신이 직접 채취하고 손수 다듬은 더 좋은 은행을 가족에게 먹이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소화 기능이 좋지 않아 배가 자주 아팠던 저를 위해, 감기에 자주 걸리는 동생을 위해, 면역력이 약한 엄마를 위해 아빠는 가을이 돌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은행 열매를 직접 손질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자신의 편안함보다 가족의 건강을 먼저 챙기셨던 아빠가 그리워집니다.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낮에는 힘든 석수 일 하시고 밤에는 자녀들을 위해 생명책자 써주시던 하늘 아버지도 이와 같은 마음이셨겠지요. 가을날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아버지, 그립습니다.
    13
    북마크
    주소가 복사되었어요.
    더 보기
    뒤로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