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나들이, 여름휴가, 가을산책, 겨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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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까치꽃, 유년시절 무척 좋아했던 들꽃의 이름이다. 어릴 적에는 꽃 이름이 뭔지도 몰랐다. 성인이 되어 봄까치꽃이란 이름을 알게 된 후 봄이 오면 항상 그리워졌다. 엄마가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 봄이면 봄까치꽃이 푸릇푸릇 별처럼 돋아나 온 밭둑에 은하수로 흘렀다. 엄마는 봄까치꽃에 둘러싸여 온종일 밭을 매고, 나는 밭둑에서 이름 모를 들꽃들을 꺾으며 놀았다. 엄마가 머리에 삼각으로 두른 수건에서 봄의 종소리가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어린 내 눈에 엄마는 만물을 움직이는 조종사였다. 엄마가 호미질한 밭에서는 먹거리가 돋아났다. 나는 밭에서 뭘 따오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좋아했다. 엄마가 호미로 뚝딱 요술을 부려놓았는지 밭에 가보면 신기하게도 엄마가 주문한 채소들이 자라나 있었다. 오이 두 개, 가지 세 개, 깻잎 서른 장, 고추 열다섯 개. 소쿠리에 채소들을 따 가면 엄마는 잘 찾아왔다고 마치 내가 만들어 온 것처럼 칭찬해 주었다. 사실은 다 엄마의 손길로 열린 것이었는데. 엄마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밤색이 되고 호미를 잡은 엄마 손엔 물집이 잡혀 있었다.
여름 해가 따갑게 쏘는 화살을 맞고 누렇게 옥수수가 익으면 내 근심은 커졌다. 더운 여름, 마당에 화덕을 놓고 옥수수를 삶아 시장에 내다파는 엄마를 봐야 했으니까. 옥수수를 담은 커다란 양푼을 짊어진 엄마의 옷은 비를 맞은 듯 땀으로 젖었다. 엄마의 땀방울 하나하나가 옥수수 열매로 들어앉은 것 같아 옥수수를 먹는 것도 싫었던 적이 있다.
엄마가 호미처럼 밭에 웅크리고 앉아 하지감자(감자를 일컫는 전라, 경상, 충청도 방언)를 캘 때도 그랬다. 파도 파도 나오는 하지감자를 쪄 먹을 생각에 침이 고였지만,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종일 밭일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동그란 감자가 목에 턱 걸릴 것만 같았다. 밭은 엄마에게 뼈아픈 희생을 요구하고 우리에게는 항상 풍요로운 먹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늦여름, 가을을 잡아당기려고 힘을 써서인지 고추가 벌겋게 물들었다. 몇 개만 따도 매운 고추를 온 밭을 헤매며 몇 포대나 담아내느라 엄마의 손가락도 고추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깨는 어떤가. 깨를 베어 마당에 자루를 깔고 털면 얄미운 깨들이 자루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엄마는 흩어진 깨알들을 소중하게 주워 수십, 수백 번의 키질을 했다. 맛있고 고소한 깨소금에는 엄마의 수고와 땀이 배어 있었다.
가을걷이가 시작되면 엄마는 논으로 밭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깊어가는 가을 따라 신작로에 나락을 널어서 말리는 일이 제일 번폐스러웠다. 낮에는 나락을 갈퀴로 널어서 말리고, 해가 지면 포대에 담았다가 그다음 날 또 널어서 말려야 했다. 나는 포대를 잡고 서서 가을걷이가 빨리 끝나기만을 빌었다. 속으로는 절대 농사는 안 지어야지 다짐했다.
엄마는 지붕에 돌덩이처럼 무겁게 얹힌 늙은 호박을 따와 다디단 호박죽을 쑤어주기도 했다. 딱딱한 껍질 안에 달고 고소한 속살을 지닌 늙은 호박은, 보드랍던 살갗에 굳은살이 박이고 자식들에게 속까지 다 내어주는 엄마 같았다.
겨울이면 가족들을 따뜻한 방에 재우기 위해 엄마는 수시로 갈퀴나무를 해왔다. 엄마가 머리에 갈퀴나무를 이고 와 부엌 한편에 잔뜩 쌓아놓으면 부자가 된 듯했다. 갈퀴나무가 타들어 가는 아궁이가 있어 추위는 우리 집에 얼씬도 못했다. 나는 아궁이 속에서 엄마가 꺼내주는 고구마로 허기진 배를 따뜻하게 채우며 황금빛 웃음을 짓고는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가득한 엄마의 사랑과 희생 이야기가 고향 집 굴뚝 연기처럼 가슴 먹먹하게 피어오른다. 끝도 없이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