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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엉덩이로 이름 쓰기

정장에이대팔23.06.01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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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에 거주하던 형네 가족이 귀국했다. 수년간 떨어져 살았지만, 세상 좋아진 덕에 영상 통화로 얼굴 잊지 않고 지냈다. 어린 조카들 생각에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어떻게 해야 즐거운 만남이 될까 걱정됐다.

    아이들과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방 한구석에 있던 보드게임이 눈에 들어왔다. 보드게임을 챙겨 들고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저마다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나는 조카들에게 점수를 따려 안간힘을 썼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상상력 넘치는 질문을 쏟아냈다. 한 시간여의 질의응답으로 지쳐버린 나는 비장의 무기 보드게임을 꺼내 들었다.

    9살 조카와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인 블록쌓기 게임이었다. 조카는 많이 해봤다는 듯, 간단히 몸을 풀더니 나에게 대결을 신청했다. 벌칙은 ‘엉덩이로 이름 쓰기’로 협의했다.

    ‘만약 내가 이기면 조카의 마음이 좋지 않겠지. 일부러 져주면 자존심이 상하겠지. 티 나지 않게 져야겠다.’

    조카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은데 티 나지 않게 지기란 쉽지 않았다. 쌓여 있는 블록 중 무엇이 함정인지 알 길이 없었고, 조카의 손 감각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의도와 다르게 조카는 블록을 넘어뜨리고 말았다.

    아이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급기야 엄마를 찾으며 울기 시작했다.
    “엉엉, 엄마 나 내 이름 쓸 줄 몰라. 엉엉.”
    그랬다. 조카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글로 자기 이름을 쓸 줄 몰랐던 것이다.

    조카에게 영어로 써도 된다며 위로해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형수님이 아이의 손바닥에 한 자, 한 자 한글 이름을 적어 가르쳐 주고 나서야 조카는 울음을 멈췄다.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면서 ‘엉덩이로 이름 쓰기’ 벌칙을 정한 조카의 순수함에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시도조차 하지 않은 도전들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게임에는 패했지만 조카는 그 덕(?)에 이름 쓰는 법을 배웠다. 때로는 앞뒤 재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엉덩이로 이름 쓰기’보다 더한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항상 해결책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무엇이 걱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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