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아빠가 부산으로 발령받아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공휴일에도 일하는 아빠를 응원하고 오랜만에 가족끼리 바다도 볼 겸 엄마, 오빠와 부산에 가기로 했다.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껏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타지에서 일했다. 아빠가 머무는 곳에 가보기는 처음이라 마음이 들떴다.
집에서 부산까지는 차로 3시간 30분 거리. 안식일 저녁 예배를 마치고 신이 난 목소리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지금 출발할 건데, 도착 예상 시간이 12시야. 아빠 먼저 자.”
“그래, 조심히 와.”
평소 아빠는 10시면 잠든다. 우리가 도착할 즈음이면 아빠는 깊이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자정이 넘어 아빠의 숙소 근처에 도착한 우리는 아빠를 깨울까 봐 굳이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낯선 거리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던 때, 볼이 빨개진 채로 길가에서 서성이는 아빠가 보였다. 깜짝 놀라 차창을 내리고 아빠에게 말을 쏟아냈다.
“아빠! 추운데 왜 나와 있어? 안 자고 있었으면 미리 전화해서 어디쯤인지 물어보지!”
아빠는 별말 없이 빙긋 웃기만 했다. 숙소에 들어가자 훈훈한 공기와 아늑한 잠자리가 우리를 반겼다. 겨울에도 시원하게 자는 아빠가 따뜻하게 자는 걸 좋아하는 나를 배려해 미리 온도를 맞춰둔 듯했다. 덕분에 추위에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았다.
방 안 곳곳을 구경하다 냉장고를 열어 봤다. 콜라, 에너지 드링크, 로제 떡볶이 등 평소에는 아빠가 입에 대지 않는 음식이 많았다.
“아빠가 어쩐 일로 이런 걸 다 먹어?”
“너희 먹으라고 사다 놨지.”
부산에 가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 아빠가 별 반응이 없어서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빠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우리를 기다렸다. 따뜻한 잠자리와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도 준비해 두었다. 아빠에겐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보다 우리가 온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나 보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더 빨리 와볼걸 하는 생각도 들어 아빠에게 미안했다.
벌써 한참이나 지난 일이지만 그날 유난히 행복해하던 아빠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이제야 깨닫는다. 아빠의 기다림은 그리움이었음을.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다를까. 나를 그리워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내가 하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나를 어떻게 기다리고 계실까? 내가 편히 거할 안락한 하늘 처소를 예비하시고 내가 좋아하는 천상의 음식을 준비하고 계실 거라 생각하니, 오늘따라 하늘 아버지가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