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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울타리

아버지 얼굴에 그어진 인생 장부

2020.0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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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든 아버지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다. 마주 볼 때는 보이지 않던 주름이 잠든 아버지 얼굴에서는 선명하다. 깊고 얕은 주름이 마른 논바닥같이 골을 이루는데, 이마를 가로지르는 굵은 주름과 눈가의 잔주름이 다투는 듯하다. 분절음처럼 뚝뚝 끊긴 것도 있고 밭이랑처럼 연결된 것도 있다. 산에서 보았던 오래된 나무뿌리 같기도 하다.

    아버지의 주름은 세월이 그어놓은 인생의 장부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며 겪었던 수많은 아픔의 흔적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자식 사랑이 유별났던 아버지에게 아이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분신이었고, 특히 허약했던 막내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아끼던 자식들이 자랄수록 아버지 얼굴의 주름도 깊이를 더해갔다. 세월은 아버지에게 주름만 남긴 것이 아니다. 겉보기에는 정정해도 성한 곳이 없다. 목 디스크로 고개를 숙이는 일은 엄두도 못 내시고, 무리한 날은 팔까지 저릿저릿하다고 하신다. 허리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평생 쉬어본 적 없는 분이 작은 텃밭 경작도 관두셨다. 몸을 추스르기 힘든 날은 자식들이 신경 쓸까 봐 아예 옆에도 오지 못하게 하신다. 불편한 것이 많아도 입 밖으로 내시는 법이 없다.

    아버지의 잠든 모습이 애처롭다. 곤히 잠든 아버지의 숨소리마저 애잔하게 들린다. 주름은 열심히 살아온 세월의 훈장이라지만, 너무 많다. 주름마다 음각되었을 피로와 통증이 목으로 허리로 전해져 당신을 주저앉힌 것은 아닌지.

    가족을 위해 당신의 인생 장부에 기꺼이 그었던 빚을 이제는 갚아드리고 싶다. 가로금 위에 세로금을 그어 빚을 지웠던 외상 장부처럼 당신의 주름도 말끔히 지워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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