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을 하나 지워드립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떤 아픈 기억을 지울까? 최근 마음의 얼룩을 지워주고 주름을 펴준다는 내용의 소설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마음 세탁소를 찾게 된다. 세탁소 주인은 손님들에게 흰 티셔츠를 나누어주고 힘들었던 기억, 지우고 싶은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말한다. 그 기억을 떠올린 후에 흰 티셔츠를 마주하면 얼룩이 생기는데 손님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 얼룩을 지울지 간직할지 정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엄마는 어떤 기억이 가장 아팠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지식한 집안에서 삼 남매를 키우며 혼자 살림할 때 힘들지 않았을까? 사춘기가 심했던 나로 인해 상처받고 아프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열 달을 품어 낳은 자식이 엄마에게 가장 상처를 많이 준 것 같았다. 엄마의 얼룩은 너무 짙어서 그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엄마는 누군가가 엄마의 가장 힘들거나 아팠던 기억을 지워준다면 어떤 기억을 지울 것 같아요?”
“엄마는 어렸을 때 받았던 상처들을 지우고 싶어.”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되물었다.
“아, 진짜? 우리 셋을 키우면서 받은 상처들은 지우고 싶지 않아요?”
“너희들을 키우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어. 나는 너희들 키우면서 다 좋았다.”
나는 무척 놀랐다. 사춘기와 고등학생 시절,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나는 엄마에게 곧잘 화를 내고 엄마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체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들을 상처와 아픔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라는 엄마의 이 한마디에 우리가 엄마에게 준 상처는 상처가 아닌 게 되었다.
하늘 어머니께서는 어떠하셨을지 생각했다.
‘우리가 천상에서 배반했던 아픔을 지우고 싶지 않으실까.’
‘이 땅에서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고 매일 죄를 짓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아픔을 지우고 싶지 않으실까.’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늘 어머니께서는 매일이 아픔의 연속이셨을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잠잠히 말씀하신다.
“나는 여러분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나의 전부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가시처럼 당신의 가슴을 찌르는 우리를 아픔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날마다 우리를 품어 안으셨고 우리를 당신의 삶 그 자체로 여기셨다. 어쩌면 너무 깊게 자리 잡아 지워지지 않을 얼룩이겠지만 이제는 그 사랑에 보답하는 자녀가 되고 싶다. 변화된 우리가 어머니의 아름다운 세마포 장식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