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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아빠의 기다림

2020.0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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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년 전 일이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쌀쌀한 밤바람에 굵은 빗방울까지 더해져 발길을 재촉하는데 엄마에게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엄마 지금 병원에 있어. 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집에 가면 씻고 먼저 자.’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만약 아빠에게 큰일이라도 생긴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겨우 집에 도착하니 불 꺼진 거실이 휑했다. 평소 아빠는 거실 소파에 앉아 내게 ‘오늘은 별일 없었냐’, ‘배는 안 고프냐’고 물었었다. 나는 대충 대답하고 방에 쏙 들어가버리기 바빴다. 아빠의 질문이 새삼 그리웠다.

    다음 날 아침, 검사 결과가 나왔고 아빠는 세 달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매일 아빠에게 찾아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었다.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으면 아빠는 맞장구를 쳐주었다. 아빠가 입원한 이후로 오히려 우리 부자(父子)는 훨씬 더 가까워졌다.

    시험이 다가오면서 아빠에 대한 걱정과 관심은 점점 줄어들었고 거의 2주 동안 아빠를 찾아가지 않았다. 아빠는 매일 내게 응원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휴대폰으로 주고받은 짧은 대화에도 ‘아들이랑 연락하니까 힘이 난다’면서.

    ‘오늘 하루는 잘 보냈니? 우리 아들, 얼굴 보고 싶은데…. 요즘 많이 바쁘지?’

    내 생활이 더 중요했던 나는 메시지 속에 담긴 아빠의 진심을 몰라봤다. 아빠의 허전한 마음을, 바쁘다며 찾아오지 않는 아들을 향한 아빠의 기다림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오랜만에 찾아간 아빠의 병실 앞에서 미안한 마음과, ‘왜 그동안 오지 않았냐고 꾸중받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쉽게 문을 열지 못했다. 예상과 달리 아빠는 날 보자마자 어서 오라며 반겨주었다. 아빠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생기 없는 입술에, 두 팔은 앙상해 보였고 몸 이곳저곳에는 갑갑한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아빠에게 용서를 구하듯 국에 밥을 말아 떠먹여드리려 했지만 아빠는 그마저도 소화가 안 된다며 드시지 못했다. 원래도 마른 아빠가 살이 더 빠진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괜찮아. 보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매일 밤 연락하니까 힘이 났어.”

    아빠는 고개를 푹 숙인 내 머리를 힘없는 팔로 쓰다듬었다. 울음을 꾹 참으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몇 번이나 나의 손을 꼭 잡았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집에 가려는데 아빠가 불러 세웠다.

    “채운아, 냉장고에서 매실 음료수 하나 꺼내 가. 너 오면 주려고 아껴뒀던 거야.”

    아빠와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가 준 음료수를 다시 꺼내 보았다. 아빠 생각에 눈물이 나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내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나를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외면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도 늘 사랑으로 맞아주시고 괜찮다고 다독여주시는 아버지 생각에 코끝이 찡해진다.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 이제 용기를 내서 말해보련다.

    “아버지,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철없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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