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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엄마의 기억

2024.03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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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에 입원한 엄마가 밭에 심어둔 푸성귀 걱정을 어찌나 하던지, 동생과 어떻게든 정리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치고 친정집에 내려왔다. 밭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고 나니 팔다리는 천근만근이고 어깨며 허리 등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두꺼운 노트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나, 세상에….’

    얼마 안 되는 푸성귀를 판 뒤, 저녁이면 엎드려 가계부를 쓰던 엄마가 매일 정성스레 써 내려간 일기장이었다. 노트에는, 지난 2년 동안 빠듯한 시골 살림을 꾸린 엄마의 고단한 나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몸 안에 암이란 녀석이 자라는 것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약에 의존해 온 엄마는 ‘하나님, 감사합니다’로 하루를 시작했다가도 ‘하나님, 너무 힘들고 지칩니다’로 끝을 맺고는 했다. 그 외에는 몽땅 자식들 얘기뿐이었다.

    ‘출퇴근길에 매일 안부 전화를 하는 막내아들이 든든하다. 막내를 안 낳았으면 어찌 됐을까?’

    ‘하나님, 아들이 해외 출장을 갑니다. 사고 없이 건강하게 돌아오도록 지켜주세요.’

    ‘셋째가 즈그 아버지 좋아하는 아나고(붕장어)를 사왔다. 직장 일만 해도 피곤할 텐데 밭일까지 도와주고 갔다. 많이 피곤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둘째 사위가 직장에서 작업복이 나왔다고 아버지 입으시라고 보냈다. 즈그 입지.’

    ‘막내 사위가 갈비랑 사골을 보냈다. 즈그 살기도 빡빡할 텐데 우리까지 신경 써주니 고맙다.’

    ‘무슨 일이 있나? ○○이가 며칠째 전화도 없다.’

    엄마의 일기에는 내가 한 달에 몇 번이나 엄마한테 안부 전화를 드렸고, 그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다섯 자녀의 일상을 빠짐없이 기억했다. 당신의 건강보다 자녀들의 안위가 더 걱정이었고, 당신의 기쁨보다 자녀들의 행복이 우선이었기에 우리의 작은 정성에도 힘을 얻으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던 것이다. 이제는 엄마 품을 떠나 각자의 삶을 사는 자녀들이지만 엄마는 여전히 자녀와 함께였다.

    내게는 천상에서부터 나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신 또 한 분의 어머니가 계신다. 당신 삶의 이유가 오직 자녀라 하시며 오늘도 자녀의 하루로 당신의 기억을 채워가시는 하늘 어머니. 자녀의 작은 숨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하늘 어머니의 사랑을 누가 멈출 수 있을까. 어머니의 기억이 자녀들로 인한 근심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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