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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한 컷

밭갈이

2023.0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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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할머니는 소일거리로 텃밭을 가꾸십니다. 할머니의 밭일을 도우려고 가족 모두가 외가로 향했습니다. 저녁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낸 뒤, 한낮의 뙤약볕을 피하려 아침 일찍 서둘러 밭으로 갔습니다.

    고춧대를 정리하고 밭을 다져놓는 것이 그날 우리의 할 일이었습니다. 밭이 작아서 금방 끝내겠거니 하고는 고춧대를 뽑으려 호기롭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제 키의 반도 안 되는 줄기의 뿌리가 흙을 꽤 단단히 잡고 있었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였다가 금세 지쳐버렸지요.

    결국 줄기를 뽑는 건 남동생에게 맡기고, 줄기와 지지대를 묶은 끈을 가위로 잘라냈는데 이파리를 헤치며 허리를 숙였다 폈다를 반복하니 이것도 꽤 힘들었습니다. 서늘한 아침에도 땀이 흘렀습니다.

    고춧대 150여 포기를 모두 정리해 밭 한쪽에 치우자 맨살 같은 흙이 드러났습니다. 본격적인 작업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아빠가 쇠스랑으로 흙을 헤집으면 저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호미로 흙을 잘게 부수었습니다. 쪼그려 앉은 다리도, 호미질하는 손목도 아팠습니다. 중간중간 드러나는 잡초와 그 뿌리까지 제거하려니 시간은 배로 걸렸습니다. 꿈틀대는 지렁이에 놀라 펄쩍 뛰어오르기도 했고요.

    밭갈이를 마치고는 비료를 밭에 뿌리고 다시 갈아야 했습니다. 제가 기진맥진해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아빠는 밭의 흙을 평평하게 다지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검은 비닐까지 꼼꼼히 씌우고서야 모든 작업이 끝났습니다.

    밭의 규모는 작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체력도 많이 필요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그동안 어떻게 밭을 가꿔오셨을까 신기했습니다.

    땀 흘리며 완성해서 그런지 반듯하게 펼쳐진 밭이 예뻐서 감탄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밭이 예뻐 보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아빠도 “사람 손이 정성스럽게 닿으면 이렇게 아름다워진다”며 흐뭇해했습니다.

    작은 텃밭을 가꾸는 데도 이토록 정성이 필요한데 제 마음 밭은 얼마나 가꾸어왔는가 생각했습니다. 말씀의 양분이 없어 척박한 상태는 아닌지, 다른 생각이 가시와 엉겅퀴처럼 무성히 뻗어나가 있지는 않은지, 생명수가 부족해 딱딱하게 굳어 있지는 않은지 항상 살펴야겠습니다. 묵은땅을 기경하듯 하나님 말씀의 쟁기로 마음 밭을 갈아엎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옥토로 가꾸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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