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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울타리

가장의 무게

2023.03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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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님, 겁 많으세요?”

    “허허허, 겁 많지. 어떻게 알았냐?”

    “아니, 이 사람이 겁이 많아서 누굴 닮았나 보니 어머님은 아니신 것 같아서요.”

    “허허, 그래 맞아. 내가 겁이 많단다.”

    “그런데 정년 퇴임 하실 때까지 그 긴 세월을 어떻게 경찰로 사셨어요?”

    “음, 아버지는 말이야, 가장이니까!”

    평소 찻길 조심하고 좌우를 잘 살피고 다니라고 당부하는 남편이 매사에 신중한 시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서 명절에 우스갯소리로 말을 꺼냈는데 시아버지의 대답에 아차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놀랐어요. 죄송한 마음뿐이네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말 힘드셨겠어요.”

    남편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70년대 당시 아버님은 2교대 근무를 하셨다고 한다. 12시간씩 일하는 2교대 근무 자체도 힘들었겠지만, 늘 긴장된 생활 때문이었는지 주무시다가 가끔 쇼크를 일으키기도 하셨다고. 그럴 때면 어머님이 아버님을 위로하며 보살펴 드렸고, 날이 밝으면 아버님은 두 자녀와 아내를 위해 어김없이 출근하셨다고 한다. 아버님은 단 한 번도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신 적이 없었고 그렇게 견딘 하루하루가 30년의 세월로 쌓여 정년 퇴임을 맞은 것이다. 아버님이 짊어졌던 가장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문단속 잘하고, 가스 밸브 잘 잠그고, 길 건널 때 좌우 잘 살피고, 이상한 사람 만나면 그냥 피하라고, 찾아뵐 때마다 우리를 걱정해 주시는 아버님이셨다. 가장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바꾸어 모든 것을 참고 희생하신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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