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칼로 직접 연필을 깎았다.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가 참 좋았다. 어릴 때는 엄마가 종종 연필을 깎아주셨다. 나는 울퉁불퉁 나무를 다 깎아버리고 연필심도 부러뜨리기 일쑤였지만 엄마가 깎은 연필은 어찌나 정갈한지 아름답기까지 했다. 당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로서는 손으로 하는 것이라면 다 잘하는 엄마가 신기하고 대단해 보였다.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박사 같았으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엄마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졌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졌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엄마의 인생을 단면으로만 바라봤던 나의 오만이었음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엄마의 인생은 꼭 연필 같다. 제 몸을 깎아 종이 위에 글자로 내어주고 자신은 점점 짧아져 몽당연필이 되는 것처럼, 나에게 좋은 것만을 주기 위해 애쓰는 엄마의 삶은 자신을 깎아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 수고를 자녀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엄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연필을 깎을 때면 나를 위해 정성스레 연필을 깎아주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하늘 어머니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본다. 우리를 한없이 사랑해 주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도 오직 자녀들을 위한 사랑을 베푸시는 어머니께 감사드리며, 그 은혜를 연필로 꾹꾹 눌러쓰며 마음에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