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의 수도인 다카에서 남부의 바리살 지역까지는 9시간 정도 걸립니다. 얼마 전 배를 타고 바리살 지교회에 갔을 때는 뎅기열에 걸려 일정이 다소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체력이 바닥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고 자리만 있으면 계속 눕고 싶었습니다.
겨우 지교회 업무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배에 올랐습니다. 마침 방글라데시의 명절 기간이라 배에는 고향에 왔다가 돌아가는 승객들로 북적였습니다. 사람들이 각자 가져온 천을 펼쳐서 양철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은지라 배에 늦게 탄 저와 식구들은 서 있기도 어려웠습니다. 앉을 만한 공간을 찾아 헤매다 저희가 다다른 곳은 지붕 위였습니다. 자리를 깔고 이제 좀 쉬겠구나 안도하며 눈을 붙이려는데 이번에는 바람이 극성이었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불던지 이대로 9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좀 쉬어보려 하는데, 이게 또 무슨 일인지!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겁니다. 금세 빗방울이 굵어져 더 이상 그대로 누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붕에서 내려와 다시 쉴 만한 공간을 찾아다닌 끝에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계단에 쭈그려 앉았습니다.
괜스레 혼자 울적해하다 문득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장 20절)
예수님은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서 천만 천사를 호령하실 하나님이십니다. 세세토록 영광 받으실 창조주께서 올 필요도 없고 눈길조차 주지 않아도 되는, 우주의 먼지와도 같은 이 땅까지 오셔서 모진 핍박과 고난을 견디신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함입니다. 육체의 가시 옷을 입으셨기에 당신도 괴로우셨겠지요. 오죽하면 머리 둘 곳조차 없다고 한탄하셨을까요. 하물며 미물들도 쉼을 얻을 거처가 있는데···.
두 번째 육체로 오셔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겨주는 이 하나 없는 세상에서 자녀 찾는 세월은 설움과 아픔으로 채워졌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지금도 휘몰아치는 광풍을 온몸으로 맞서며, 하늘에서 잃은 아들딸들을 애타게 부르고 계십니다.
청년 시절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말씀의 의미를, 10여 년이 지나 아주 잠깐이나마 직접 불편과 아픔을 겪어보고서야 헤아리는 것이 너무 죄송하고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시려 짊어지신 시련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구원받기 위해 제 자신이 마땅히 견뎌야 하는 고난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지 절절히 깨달으며 다짐했습니다. 하늘 본향에 돌아가기까지 아버지 어머니께서 우리 대신 짊어지신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겠노라고.
오늘도 저를 위해 희생 길을 걸으시는 하늘 부모님을 생각하면 제 앞에 놓인 길이 꽃길처럼 보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제게 ‘해외선교’라는 과분한 축복과 깨달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만민에게 찬송을 받으시기까지 쉬지 않는 복음의 나팔수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