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능력이 없어서 니들한테 풍족하게 해준 것이 없는데 무엇을 바랄 수 있겠니.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지···.”
친정엄마가 모처럼 우리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선물이나 용돈을 받을 때면 항상 하시는 말씀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엄마의 얼굴에는 민망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서 저희들 이만큼 키워주신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데요. 자꾸 이러시면 섭섭해요.”
자식들한테 미안한 마음 갖지 말라고 해도 “아니다, 미안하다”라고만 하니 속상해서 일부러 엄마에게 서운한 척을 한 적도 있다.
얼마 전 친정에 갔다가 우연히 엄마가 쓴 편지를 보고 엄마가 왜 그랬는지 알았다. 편지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엄마의 아버지에게 쓴 것이었다. 외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지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가 어느 한 부분에서 시선이 멈췄다.
‘시간이 흘러 마음의 짐을 놓고 아버지께 다가가고 있을 때 아버지는 갑자기 교통사고로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떠나셨지요.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못 해드린 것만 생각나 후회하며 삽니다. 아버지께 불효한 죄로 제 자식들한테 아무런 요구도 못 하고 삽니다.’
생전에 부모님께 잘해드리지 못한 것을 몹시 죄스러워한 엄마는 당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으셨던 거다. 그 때문에 자식들한테까지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왔을 거라 생각하니 더 이상 편지를 읽기가 힘들었다.
불효를 후회하는 엄마의 편지는 지금 내 모습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과연 엄마에게 제대로 된 효도를 하고 있는지 자신할 수 없어서였다. 말로는 엄마를 사랑한다 하면서 정작 엄마가 바라고 원하는 일들을 하고는 있는지.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 잘할 걸 하며 후회만 하지는 않을는지. 겨우겨우 읽어 내려간 편지 말미는 이렇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아버지, 지금까지는 후회하며 살았더라도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이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 속 엄마의 다짐은 나의 다짐이 된다. 이제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엄마를 원 없이 사랑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