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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챙김이

2019.0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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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우리 모둠에서 제가 ‘챙김이’를 하게 됐어요.”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가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챙김이? 그게 뭐야?”

    “모둠 친구들을 챙겨주는 거예요. 친구들이 준비물을 안 가져오면 같이 나눠 쓰고, 몸이 아프면 보건실에 데려다주고 하는 거요.”

    아이의 말에 의하면 챙김이 외에도 모둠을 이끌어가는 ‘이끎이’, 선생님 말씀이나 공지 사항을 기록하는 ‘기록이’, 가정통신문이나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나눠주는 ‘나눔이’ 등 모둠에서 각자 맡은 역할이 여러 가지였습니다. 많은 역할 중에 챙김이를 하게 된 이유를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그게 제일 쉬울 것 같아서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딸아이의 대답에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챙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해보지 않으면 결코 모르니까요. 저는 챙김이가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이라고 일러주면서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했습니다. 딸아이가 과연 챙김이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표정이 시무룩했습니다.

    “엄마, 챙김이가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어요.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 신경 써야 해요. 어떤 친구는 연필을 안 깎아 와서 제가 대신 깎아줬고요, 수학 문제를 늦게 풀어서 같이 풀어주기도 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역할을 할 걸 그랬어요.”

    챙김이가 얼마나 힘든지 한참 하소연하던 딸아이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을 꺼냈습니다.

    “엄마도 힘들겠다. 아빠랑 나 맨날 챙겨준다고.”

    생각지도 못한 위로였습니다. 어떤 말로 답을 할까 고민하다 웃으며 말했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하니까 괜찮아. 사랑하는 사람을 챙기는 건 행복한 일이거든.”

    아이에게 ‘사랑하면 이것도 챙겨주고 싶고 저것도 챙겨주고 싶은 거다, 친구를 아끼는 마음으로 챙겨주면 많이 힘들지 않을 거다’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차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챙기듯 시온의 형제자매를 돌보고 있는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일이라면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마음을 쓰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힘들다는 생각보다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만일 시온에서 형제자매를 돌보는 일이 마냥 힘들게만 느껴진다면 그건 제게 사랑이 부족해서일 겁니다.

    우리의 작은 사연 하나하나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넘치는 사랑으로 돌봐주시는 하늘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장 34절) 하셨으니 어머니처럼 저도 형제자매를 온전히 사랑하며 시온에서 주어진 챙김이 역할을 잘 수행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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