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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엄마의 본능

2019.0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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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님이랑 시장에 가서 장 보고 음식 준비하고 친척들에게 인사드리러 다니고…. 명절을 맞아 모처럼 고향 집에 내려가면 ‘연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정신이 없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누구보다 바쁜 사람은 역시 엄마다.

    작년 설날이었다. 큰집과 외갓집을 거쳐 부모님 댁에 돌아오니 벌써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는 외투를 벗자마자 서둘러 밥상을 차렸다. 하루 종일 먹은 명절 음식으로 꺼질 틈이 없었던 배는 ‘엄마표’ 저녁밥으로 다시 그득히 채워졌다.

    후식으로 과일까지 깎아준 엄마의 손길은 여전히 분주했다. 몇 시간 뒤면 집으로 돌아갈 아들 내외에게 싸줄 음식이며 물건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큰엄마가 짜주신 참기름과 농산물 직판장에 가서 사온 사과, 미리 만들어둔 밑반찬, 직접 말려서 볶은 우엉, 아껴두었던 주물 냄비, 선물받은 생필품 세트 등등 자잘한 것까지 엄마는 확인 또 확인하며 빠짐없이 박스에 담았다. 큼직한 박스 몇 개가 금세 꽉 찼다.

    며칠 전 우리가 도착했을 때부터 끼니마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식사를 차려주었는데 가는 날까지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바쁜 엄마가 안쓰러웠다. 아닌 게 아니라 엄마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예전부터 크고 작은 병환을 달고 살았던 엄마의 체력이, 적지 않은 연세에 허리 수술을 받은 뒤로 더 약해진 터였다.

    아무것도 안 가져가도 되니 좀 쉬시라고 말리자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을 보내야 내가 쉬지. 그 전에는 못 쉰다.”

    “아니, 그냥 같이 앉아서 쉬면 되잖아.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나도 그러려고 하는데 너희들 있을 때는 그게 안되네.”

    몇 번을 말해도 엄마는 우리가 차에 오를 때까지 잠시도 앉아 있지 못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 평소에 챙겨주지 못했던 것들을 한번에 다 챙겨줄 절호의 기회라도 만난 것처럼. 이제는 자식들한테 대접만 받으셔도 좋으련만.

    이쯤 되니 엄마의 ‘주는 사랑’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본능의 영역이 아닐까 싶었다.

    “왔다 갔다 하느라 수고했다. 바빠도 잘 챙겨 먹고, 안 아픈 게 최고다.”

    집에 도착해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언제쯤이면 엄마가 우리에게 해주는 것의 반만이라도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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