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엄마와 통화하다 생활비 이야기가 나와 내친김에 말했습니다.
“이제 휴대폰 요금은 제가 낼게요.”
부모님과 살 때는 부모님이 휴대폰 요금을 내주셨지만 취업하면 제가 내는 걸로 이미 합의(?)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제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제가 쓴 걸 제가 내는데 왜 엄마가 미안해요” 하며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엄마는 “그래도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철없는 초등학생 시절, 겁 없이 엄마 지갑에 손을 댔다가 호되게 회초리를 맞았는데 그날 밤 자는 척하는 저에게 엄마는 조용히 다가와서 종아리에 연고를 발라주며 말했습니다.
“많이 아팠지? 미안해.”
집안일이나 물건 들어달라는 부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 미안한데….”
제가 몸이 안 좋아 입원하거나 엄마가 편찮으셔서 입원해도 엄마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결같았습니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고맙다’는 말도 자주 했습니다. 마땅히 제가 해야 할 일부터 시작해서 집안일을 조금만 도와줘도, 심지어 제가 건강한 것도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항상 제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엄마의 모습은 하늘 어머니를 연상케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우리가 조금 수고하고 아파하는 일에 한없이 미안해하시는가 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도 무척 고마워하십니다. 그때마다 제가 얼마나 어머니께 사랑받고 있는지 느낍니다.
영육 간 어머니께 자주 듣는 말들을 저는 괜한 자존심을 앞세우느라 식구들에게 쉽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형제자매에게 “미안해요”, “고마워요”라고 말할 줄 아는 겸손한 자녀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