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고쳐 뭐하냐.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집 고칠 돈 있으면 아이들 학비로 모아둬라. 지금 이대로 괜찮다. 집 고치자는 말은 꺼내지도 마라.”
사시는 집을 고치자고 할 때마다 엄마는 단칼에 거절하셨습니다. 시골집은 비가 새고 곰팡이가 피는 데다 화장실과 주방은 많이 낡았고, 안방은 코가 시릴 정도로 웃풍이 셌습니다. 진작부터 집을 고쳤으면 했지만, 엄마는 손도 못 대게 했습니다. 여름에는 농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손사래를 쳤고, 겨울에는 도시에 사는 딸들 집에 잠깐씩 머물면서 버티셨습니다. 자식들의 걱정도 잠시뿐이고 시골집은 나날이 세월의 흔적을 더해갔습니다.
어느 날 이모와 통화하다가 엄마가 깨끗하고 따뜻한 집을 부러워하더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식들에게는 괜찮다, 살 만하다고 하시며 완강하게 집수리를 막으시더니 이모에게는 속내를 비친 겁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엄마는 척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 허리도, 다리도 성치 않은데 철마다 수확한 농작물을 자식들에게 보내는 낙으로 살아왔습니다. 자식들이 가끔 챙겨드리는 용돈은 손주들 용돈으로 고스란히 돌려주셨고, 양말이며 속옷을 몇 번씩 꿰매 입으면서 정작 새 양말이나 속옷이 생기면 자식들 주기 바빴습니다. 그런 엄마가 당신 편하려고 자식들 신경 쓰이는 일을 하실 리 만무했습니다. 항상 “너희들만 편안하면 그걸로 됐다”며 당신을 위한 것은 마냥 미루고 살아온 엄마를 잘 알면서도, 괜찮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엄마 혼자 낡고 추운 집에 살게 한 것이 너무 죄송했습니다.
저희 오 남매는 당장 시골집을 고치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비용을 모으고 집수리 계획을 세운 뒤 엄마에게 알려드렸습니다. 엄마는 또 펄쩍 뛰며 만류했지만 자식들의 간곡한 설득을 결국 받아들이셨습니다.
이제 시골집 수리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집을 수리하는 동안 시내에 있는 언니 집에서 지내는 엄마는 하루가 멀다고 공사 현장에 다녀오신답니다. 눈으로 직접 봐야 인부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줄 수 있어서라는데, 꿈만 같다고까지 하신다니 많이 설레시나 봅니다. 좀 더 일찍 집을 고쳐드릴 걸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앞으로 엄마가 깨끗하게 단장된 집에서 따뜻하게 지내실 것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여태껏 엄마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줄만 알았습니다. 참 철이 없었습니다. 철없는 모습은 하늘 어머니께도 똑같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자녀들이 구원받기만을 바라시며 모든 시간을 기도와 희생으로 채워가고 계십니다. 항상 미소로 우리를 대해주시니 어머니의 깊은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잃은 자녀를 하루라도 빨리 찾기를 바라시며 애달파하심을 잊고 지낼 때도 많았습니다. 어머니 마음을 안다면 실천해야겠습니다. 오늘도 기쁜 소식 전해드릴 수 있도록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