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시간, 독립해서 살고 싶다는 동생의 말에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대학을 막 졸업하고 구미에 있는 반도체 회사에 취직했었다. 난생처음 부모님 곁을 떠나 홀로 타지 생활 하는 설렘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도 많았다. 모든 것이 낯설어서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온종일 바짝 얼어서 일하다 퇴근하면 지쳐서 밥도 못 먹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날도 집에 오니 배가 너무 고팠지만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 없어서 결국 씻지도 않고 바로 잠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민정아, 일어나서 저녁 먹어.”
엄마 목소리였다. 방문 틈으로 맛있는 밥 냄새도 솔솔 풍겼다. 무거운 눈을 겨우 떴다. 분명 엄마 목소리가 들렸는데 일어나 보니 아무도 없었다. 텅 빈 방 안에 쓸쓸한 공기만 가득했다. 순간 외로움이 확 밀려왔다. 특별할 것 없던 고향에서의 일상이 그리워서, 따뜻한 집밥과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한참을 울었다.
무용담이라도 늘어놓듯 밥과 계란말이를 입에 밀어 넣으며 동생에게 “그땐 그랬는데…” 하고 너스레를 떨 때였다. 내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엄마, 울어?”
동생과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느새 눈이 빨개진 엄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홀로 오 남매를 키우셨다. 가사 도우미, 식당 일 등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핏덩이 같던 자식들을 다 키우고 이제는 효도받으며 편하게 살날만 남았다 싶을 때 돌연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한 해 한 해 할머니의 치매는 심해졌다.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당신 몸도 가누지 못하셨다.
늘 정정할 것 같던 할머니가 늙고 병들어 병상에만 누워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단단해 보이던 엄마도 할머니를 뵙고 온 날은 참 서럽게 울었다.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신 후, 엄마 혼자 할머니 집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빈방에 할머니가 누워 계시던 그 자리에 엄마도 따라 누워보니 할머니 냄새가 나더라고 쓸쓸히 말하던 엄마의 눈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그날도, 엄마는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병원에서 듣고 온 터였다. 엄마가 아무렇지 않은 듯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곧잘 웃어서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목 놓아 우는 엄마에게 동생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괜찮다는 말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 위로였다. 그저 함께 기도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굉장한 일처럼 느껴졌다. 대학생 언니 오빠나 직장인 청년들을 보면 참 근사해 보였으니까. 막상 내가 성인이 되고 보니 생각과 달랐다. 나는 여전히 어리고 나약했으며 조심성도 없었다. 엄마가 필요한 것도 변함없었다. 그렇다면 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에 엄마는 한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만 해도 되는 존재라고 여겼다는 내용이 있다. 나 역시 착각하며 살았다. 엄마는 나보다 강하니까 내가 느끼는 슬픔, 아픔, 외로움, 쓸쓸함 따위는 거뜬히 이겨낼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엄마는 깨어지지 않는 그릇도, 누구의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할머니의 어여쁜 딸이었고 여자였다. 나에게는 누구보다 강인한 엄마지만, 여전히 어리고 나약했으며 엄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울던 엄마를 그저 놀란 눈으로 바라보기보다 다가가서 따뜻하게 안아주었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엄마의 아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제는 엄마에게 힘이 되는 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