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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은행나무 열매를 얻기까지

2021.0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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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가을, 시온 마당 뒤편의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열매가 하나둘 떨어지나 싶더니 바닥이 금세 은행으로 뒤덮였다. 누군가 밟기라도 하면 냄새가 고약할 것 같아 얼른 소쿠리에 담았다. 어릴 적에 엄마가 빈 우유갑에 은행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려주던 기억이 났다. 고소하고 쫄깃한 은행을 까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추억을 떠올리는 동안 소쿠리에 은행이 가득 찼다.

    직접 해본 은행 손질은 고난도 작업이었다. 은행 바깥쪽을 감싸고 있는 물렁물렁한 외피를 벗기고 딱딱한 중간 껍데기가 나올 때까지 씻어내는 일이 무척 힘들었다. 더구나 외피가 냄새의 근원인지라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뜨거운 물에 불려 주무르고 치대며 씻어내기를 수십 차례 반복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을 겨우겨우 억누르며 씻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흘러내릴 즈음에야 뽀얗고 단단한 중간 껍데기가 드러났다. 신문지 위에 젖은 은행을 넓게 늘어놓았다. 이제 잘 말리기만 하면 은행 수확은 끝이었다.

    밤새 팔다리가 욱신거리더니 다음 날에는 양팔에 두드러기가 빨갛게 올라와 따갑고 심하게 가려웠다. 은행과 함께 얻은 것들이었다.

    껍데기가 바싹 마른 은행 몇 개를 우유갑에 넣고 익혔다. 단단한 껍데기 사이로 연둣빛 속살이 보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은행 한 알을 먹었다. 어릴 때 먹던 바로 그 맛이었다. 정말 달고 고소했다. 역한 냄새가 나는 껍질 속에 이렇게 맛난 열매가 숨어 있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죄로 물든 우리 영혼을 깨끗이 씻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떠올렸다. 하나님의 희생을 연장시키는 완고한 고집과 교만의 얼룩은 없는지 날마다 점검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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