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전세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 즈음 환경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이사를 결심했다. 하지만 내 여건에 맞는 집은 선택 폭이 좁았다. 멀리 가자니 직장이 걸렸고, 최근 지어진 집들은 가격이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좋은 위치에 가격까지 안성맞춤인 집이 눈에 들어왔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지은 지 20년 넘은 구옥이라는 점이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창틀, 지저분한 세면대와 변기, 음산한 분위기의 조명들…. 주인과 상의 끝에 몇 군데 수리하는 조건으로 입주를 결심했다. 새 단장을 끝낸 집은 구옥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울적한 마음을 날려버릴 밝은 벽지에 자연 느낌을 그대로 살린 나무 문양의 바닥재, 개울가의 조약돌처럼 반짝이는 세면대와 외풍을 막아 따뜻하게 겨울을 지나게 해줄 이중창문까지. 새 보금자리에 만족하며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짐 정리가 어느 정도 마쳐질 무렵이었다.
모두가 곤히 잠든 새벽, 보일러실에서 굉음이 들렸다. 보일러에 문제가 생겨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다. 비명을 질러대던 보일러는 몇 시간 버티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추위와 싸우느라 잠을 설친 다음 날 아침, 기사님을 불러 보일러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나서야 사건은 일단락됐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생명이 움트는 봄이 찾아왔다. 봄비가 내리던 어느 날, 창밖 풍경에 흠뻑 젖어 있었다. 산 아래 지어진 집이다 보니 비 오는 창밖 풍경만 봐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여유도 잠시, 갑자기 베란다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래된 창틀의 실리콘이 부식되어 그 사이로 물이 새어 든 것이다. 허겁지겁 걸레로 창틀을 막고 물과 한참 씨름을 한 후 겨우 사태가 진정됐다. 다음 날 수리공이 낡은 실리콘을 떼어내고 방수 실리콘으로 말끔히 처리를 하는 것으로 물난리 해프닝도 끝났다.
여름이 왔다. 하루는 아랫집 화장실에서 물이 샌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사람을 불러 화장실 바닥을 깨고 물이 새는 곳을 확인했다. 한눈에 봐도 낡아서 갈라진 배관 틈으로 폭포수처럼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리공 말로는 화장실 바닥 전체를 깨서 시멘트를 제거한 후 배관을 새로 깔아야 한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대공사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곧바로 공사가 시작됐고 나는 생활에 필요한 필수 도구 몇 가지만 챙겨 집 근처 숙박 시설에서 생활했다. 공사 중 확인차 집에 들렀을 때 뽀얀 먼지가 집 안 곳곳에 쌓여 있었다. 공사로 어지럽혀진 집 안을 보며 ‘정말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니라 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내 영혼의 현주소는 어떤지 궁금했다. 겉으로는 형제자매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미워하고 시기할 때도 있었다.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기도 했다. 드러나지 않아도 언젠가 터질 낡은 배관처럼 내 영혼도 조금씩 불법에 잠식되고 있지는 않았는지. 가장 시급한 일은 영혼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수리하는 일이다. 환부를 깨끗이 도려내고 생명의 말씀으로 상처를 싸매리라. 고통은 따르겠지만 다가올 영원한 천국의 축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