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과외 선생님들이 그만둘 때마다 하나같이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집중력이 좋지 않았다. 짧게는 5분, 길어도 10분이 고작이었으며 잠깐 무언가를 하다가도 최소 30분은 쉬어야 했다. 책을 펴놓고 오래 집중하려 들면 글자가 꿈틀꿈틀 춤추듯 보였다. 학교에 다니고, 교회 학생부 모임에 참여하면서 한자리에 계속 앉아 버릇하니 조금 나아졌지만 남들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했다.
이런 내가 말도 않고 집중하는 순간이 있다. 글을 쓸 때다. 끈기가 없어 첫 단락만 쓰고 다른 주제의 글로 후다닥 넘어가기는 해도, 며칠에 걸려 완성한 글을 보노라면 그 순간만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감에 휩싸인다.
결국 전문적으로 글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문예창작과를 지원했다. 대학 입시를 치르고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다양한 시와 소설, 시나리오를 읽고 써봤다. 그때마다 발목을 잡은 것은 집중력이었다. 하얀 종이 위에 검은 글자를 빼곡하게 채워 결말까지 내달리고 싶지만 한 페이지도 끝맺지 못하고 덮는 일이 다반사였다. 글 쓰는 사람에게 인내와 끈기는 필수라던데, 글쓰기는 내 적성이 아닌가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글을 읽고 쓰는 일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졌다.
하루는 교회 벽에 걸린 ‘멜기세덱문학상 공모’ 포스터를 발견하고 눈을 반짝이며 쭉 훑어봤다. 수필, 소설, 동화, 논설문, 뮤지컬 대본…. 욕심이 많아서인지 다 참여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구상하고 간략히 적어둔 것만 5개가 넘었다. 이걸 다 쓰려니 집중력이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동화 두어 줄 쓰다 소설로 고개가 돌아가고, 수필에 열심히 매달리다 뮤지컬 대본으로 달려갔다.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끝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하나라도 제대로 완성하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선택한 부문이 수필이었다. 사실 수필을 마음잡고 써본 적 없는 데다 글로 쓸 만한 특별한 경험도 생각나지 않았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최근 엄마에게 들은 외할머니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외할머니 이야기에는 생소하기만 한 엄마의 어린 시절 추억과 함께 나는 겪어보지 못한 외할머니의 내리사랑이 진하게 녹아 있었다.
며칠간 글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엄마에게 달려가 다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밤새워가며 끝마친 수필. 엄마를 향한 외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글로 표현하니 내게도 그 애틋한 마음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무엇보다 한 편의 글을 완성했음에 더없이 뿌듯했다.
수필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어머니 사랑을 떠올리길 바라며 나름대로 진지하게 써내려갔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자 집중력은 덤으로 따라왔다. 나로서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글을 쓰다가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해져 집중이 곧잘 되지 않는다면 지금 내가 무엇을 쓰려 하는지,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 찬찬히 되짚어봐야겠다.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픈 메시지가 확고해지는 순간, 내 몸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책상 앞으로 가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