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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엄마의 김장김치

2020.12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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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초겨울 무렵이었습니다. 휴대전화 진동이 느껴지기에 친정엄마일 거라 예상했는데 적중했습니다. 김장 끝났으니 와서 가져가라는 전화였습니다. 발신인도 확인하지 않고 엄마라 확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3일 전부터 엄마가 매일 전화로 김장 진행 상황을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 엄마는 여름내 오빠와 고생해서 직접 기른 고추에다가, 옆집에서 농사지어 말린 고추 한 포대까지 얹어주시며 제게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막둥아, 엄마가 건강하믄 다 다듬고 가루로 맹글어서 줄 것인디 인자는 힘이 없어서 그리 못 하것다. 긍게 장 서방이랑 다듬어서 김장 맛나게 담가 묵으라잉.”

    엄마의 당부가 무색하게 우리 집으로 온 고추는 창고로 직행했습니다. 이후 엄마는 수차례 고추를 다듬었는지 물으셨고, 그때마다 저는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시라는 말로 얼버무렸습니다. 겨울로 접어들며 여기저기서 김장 소식이 들려올 즈음, 집안 행사로 온 가족이 친정에 모였습니다.

    “느그도 인자 김장 해야제. 고추는 다듬었냐? 올해도 밭에 배추 가져가서 김치 담가 묵으라잉.”

    사실 엄마는 주부인 저보다 더 주부 같은 남편을 믿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전 해에는 디스크 파열로 고생하던 저를 대신해서 남편이 기꺼이 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친정에서 뽑아 온 배추를 절이는 일부터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 손질과 버무리는 일까지,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도운 남편 덕분에 김장을 무사히 담글 수 있었습니다.

    “장모님, 올해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

    이번에는 남편마저 허리디스크를 앓아서 ‘김장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친정엄마가 변신했습니다. 당뇨합병증으로 기력이 없어 누울 자리만 찾던 모습은 다 사라지고 제 어릴 적 기억 속의 쌩쌩하던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온 겁니다. 적어도 김장을 준비하고 담그는 기간은 그랬습니다.

    저희가 돌아가고 며칠 후, 언니와 오빠네 가족이 김장을 도우러 친정을 찾았습니다. 엄마는 평소 친분이 돈독한 마을 이웃들에게 김장 품앗이를 미리 부탁해두신 상태였다고 합니다. 친정 동네에서는 70세 어르신도 젊은 축에 듭니다. 배추를 쪼개고, 절이고, 씻고, 양념 만드는 일은 청년 어르신들이 도와주셨고,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절인 배추에 양념 버무리는 일을 도우셨습니다. 매년 김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해마다 처음 하는 것 같다는 언니 오빠의 서툰 손길에 숙련된 어르신들의 솜씨가 더해져서 김장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끝났습니다.

    “막둥아, 김치 챙겨놨응께 와서 가져가라잉. 느그 입맛에는 어쩔란가 몰러도 양념이랑 젓갈을 많이 넣어서 다들 맛나다고 하드라.”

    “엄마, 나는 가서 도와주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먹기만 한단가. 수고한 언니 오빠나 많이 챙겨주소. 나는 다른 데서 좀 얻어먹으면 되니께.”

    “뭔 소리다냐. 내가 우리 새끼 줄라고 담갔는디! 엄마가 살아 있을 동안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아무 소리 말고 갖다 묵어. 언제 가지러 올 것이냐?”

    더 사양하지 못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엄마의 독촉을 받고서야 저와 남편은 통을 챙겨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김장을 도우셨던 어르신들과 나눠 먹을 귤과 간식도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늦은 저녁,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도 성치 않은 엄마가 모자와 옷으로 무장을 한 채 대문 앞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 나와 있어요! 나오지 말라고 일부러 전화까지 했구만.”

    걱정이 앞선 나머지 날씨보다 더 차가운 말을 뱉고는 이내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걱정하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웃으며 김치가 보관된 창고로 앞장서 가셨습니다. 어두운 밤길에 넘어질까 봐 우리 쪽으로 손전등을 비춰주시면서요. 엄마를 따라 도착한 창고에는 커다란 고무통에 김치가 차곡차곡 담겨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저와 한사코 더 가져가라는 엄마의 실랑이 끝에 차 트렁크는 김장 김치로 가득 찼습니다.

    이제는 자녀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연세임에도 여전히 자녀를 먼저 생각하는 엄마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마른 가지처럼 야위어 마루를 내려서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엄마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걸까요? 늦은 밤, 친정엄마의 사랑을 김치냉장고에 꾹꾹 눌러 담으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새겼습니다. 자녀란 부모의 사랑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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