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이 지나고 며칠 후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부산에 살던 때였는데 어린이날을 맞아 이모 노릇 한다고 조카들은 물론 언니와 동생까지 초대해서 해운대 바닷가와 부산의 명물을 구경시켜주고 함께 저녁도 먹었습니다. 조카들 입맛을 고려해 치킨, 피자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여러 개 주문했지요. 치킨이 나오자 조카들 손에 다리를 쥐여주었습니다. 날개는 언니와 동생에게 주고 나니 목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는 요즘 닭 목이 그렇게 맛있더라.”
아주 없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양이 적어서 그렇지 목 부위 살이 퍽퍽하지도 않고 맛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더욱이 부산에 초대한 만큼 손님을 대접하는 의미로라도 인기 있는 부위는 양보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조카가 제 모습을 유심히 봤나 봅니다. 이모가 좋은 것은 다 양보해서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까지 글썽이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저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언니는 제가 목뼈를 발라먹은 것도 몰랐다면서 미안해하며 조카의 말을 전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나한테 그러지 마. 엄마가 나한테 좋은 거 다 양보하고 안 좋은 것만 먹으면 속상하고 마음 아플 것 같아. 엄마가 좋은 거 먹고 행복한 게 진짜 나를 위하는 거니까, 엄마는 진짜 그러지 마.”
어쩜 이리도 기특한 생각을 하는지 대견할 따름이었습니다.
“어휴, 보연이는 나이도 어린데 속이 참 깊어. 언니는 좋겠네. 예쁜 딸을 둬서. 그래도 주위 사람들 걱정 너무 많이 안 하고 보연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전화를 끊고 나서도 오래 여운이 남았습니다.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에게 관심을 갖고 마음 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습니다. 애정이 있으면 저절로 눈길이 머물고 관심이 가는 법이지요.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 내 편, 내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든든한지….
문득, 삶의 모든 관심을 우리에게 두신 하늘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때로 삶이 고난으로 여겨지는 순간이 와도, 오직 우리를 위해 살아가시는 하늘 어머니를 생각하면 힘이 납니다.
저도 어머니께 기쁨이 되고 위로를 드리는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어린 조카도 엄마의 희생을 안타깝게 여길 줄 아는데 저는 어머니의 희생을 너무나 당연시하며 살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2020년을 시작하면서 서로를 돌보는 복음으로 하늘 가족 누구도 외롭지 않기를 바라셨던 하늘 어머니. 어머니 말씀대로 시온 가족 모두가 따뜻한 사랑 안에 거하기를, 어머니께서도 자녀들과 함께하시는 이 길이 외롭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