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낯선 요리들을 어디선가 배워와 우리 자매에게 선보이는 것을 좋아했다. 간식거리가 귀하던 시절, 우리는 아기 새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엄마의 자신감 넘치는 손놀림 끝에 탄생한 음식들을 맛나게 먹고는 했다. 그중 하나가 피자였다.
“이게 바로 서양식 부침개란다.”
엄마의 피자는 조금 특별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얇은 밀가루 반죽 위에 적당한 크기로 썬 고기와 야채를 듬뿍 얹고 치즈를 넉넉히 뿌려 완성하는 피자와는 사뭇 달랐다. 과장을 보태자면, 얇아야 될 피자 도우는 술빵에 버금갈 정도로 두툼했고 산처럼 쌓인 토핑에서는 야채라면 질색하는 딸들에게 어떻게든 야채를 먹여보겠다는 일념이 보였다.
하루는 엄마가 새로운 피자를 개발해냈다. 이름도 생소한 ‘고등어 피자’. 편식이 심하던 언니는 이름을 듣자마자 “그런 거 안 먹어!” 하며 한마디로 일축했다. 교회 학생부 모임에 늦을세라 부랴부랴 집을 나서던 나는 “들고 가서 친구들이랑 먹을게요”라고 대답했고, 엄마는 금세 포일을 깔아 피자를 정성껏 포장해주었다.
피자를 거절하던 언니의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면서 선뜻 다른 이들에게 권하기 망설여졌다. 모임이 끝난 후 의기소침한 채로 말을 꺼냈다.
“피자 먹어보셨어요?”
“핏짜요? 그게 뭔데요?”
“서양식 부침개인데 보통 햄이랑 야채, 치즈를 넣어 만들거든요. 그런데 이건 저희 엄마가 만든 고등어 피자예요. 아, 고등어를 통째로 올린 게 아니라 살만 발라서 반죽에 갈아 넣어 만들었대요. 먹기… 조금 그렇죠?”
“지금 가지고 있어요? 그럼 같이 먹어요!”
생각지 못한 호응에 힘입어 건넨 고등어 피자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같이 먹자는 식구들에게 “엄마가 자주 해주셔서 괜찮아요” 하며 손사래를 쳤다. 먹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정말 맛있게 먹는 식구들의 모습에 내심 뿌듯해서, 피자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친구들이 피자를 잘 먹더냐고 물었다. 엄마의 반짝이는 눈빛에 설레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요, 다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데요! 엄마가 이런 것도 해주시느냐고 엄청 부러워하던데요?”
내 말에 환히 웃음을 짓던 엄마의 표정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어 피자를 만들어주던 그 시절의 엄마보다 더 나이 많은 어른이 되었다. 좀처럼 엄마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고등어 피자에 얽힌 추억과 매번 즐겁게 요리하던 엄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자 당시의 엄마에게서 지금의 내 모습이 보였다. TV나 인터넷에서 새로운 요리 조리법이 소개되면 군침을 흘리다 어느새 재료를 구입하고 있고,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면 꼼꼼히 음미하고는 집에서 꼭 한번 따라 해보고야 만다. 함께 자란 언니와 동생은 요리에 별반 관심이 없는데 유독 나만 그렇다. 아마도 자식들에게 요리해주는 것을 행복해하던 엄마를 쏙 빼닮아서일 테다.
내일 날이 밝으면 엄마에게 고등어 피자를 기억하느냐고 여쭤봐야겠다. 조리법은 글쎄… 묻지 않겠지만 내가 엄마를 참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이야기는 빼놓지 않고 해야겠다. 벌써부터 엄마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하늘 어머니께도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노라고 기쁘게 말씀드릴 수 있는 날이 올까? 어머니를 꼭 닮은 딸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어떤 점을 닮아야 할지 고민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