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그리던 장기선교를 케냐로 가게 됐습니다. 설레는 한편,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 출국하는 날까지 항상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케냐에서의 복음 생활이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마음을 온전히 깨달아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요.
대부분 기독교인인 케냐 사람들은 성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희가 전하는 진리도 곧잘 들어주었고 말씀을 더 살피기 위해 시온에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세 연락이 끊기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힘이 빠지다가도, 생명수에 갈급한 채 헤매고 있을 영혼들이 안타까워 눈물지으실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면 낙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 끝없는 사랑을 조금씩 깨달아가며 여느 때처럼 열심히 복음의 발걸음을 옮기던 어느 날, 두 아이와 함께 지나가는 부녀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하늘 어머니에 대해 알려주니 놀라워하며 흥미를 보였지요. 이것이 자매님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자매님은 매일같이 시온에 와서 말씀을 살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묻고 또 물으면서 진리에 대한 확신을 키워나갔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해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아이처럼 순수하게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매님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자매님은 주저했습니다. 말씀을 꿀송이처럼 달게 받아들이며 진리를 알아가는 기쁨이 가득했던 자매님이 왜 망설이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그 뒤로 한 달 동안 자매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연락을 해봐도 바쁘다는 말뿐이었습니다. 남모를 고민이 생겼는지, 진리에 확신이 서지 않았는지…. 매일 밤 자매님 걱정으로 애를 태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습니다. 자매님이 시온으로 돌아와 구원의 약속을 받기를 간구드렸습니다.
어렵사리 자매님을 다시 만나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매님은 여러 사정이 겹쳐 여유없이 생활하느라 맘 편히 성경 공부를 하러 올 수 없었다며 그간의 일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고단하고 힘들었을 자매님의 사정을 듣고 나니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마음을 다 알아주지 못해 미안했고, 이제는 자매님이 하나님의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길 바랐습니다.
이후 자매님은 전처럼 말씀을 살피러 자주 시온을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애정을 담아 안부를 묻고, 사소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며 사랑과 관심으로 대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특별히 해주는 것은 없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매님 마음에 따스한 사랑이 깃들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유월절을 앞두고 용기를 내어 자매님에게 새 생명의 축복 받기를 다시 권했습니다. 자매님의 대답은 “YES”였습니다. 또 눈물이 났습니다. 이번에는 안도와 환희의 눈물이랄까요. 엘로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자매님은 유월절을 은혜롭게 지켰고, 두 아이와 꾸준히 예배를 드리며 믿음을 키우고 있습니다.
자매님을 인도하는 과정에서 가슴을 졸이며 눈물로 보냈던 시간은 한 자녀를 찾으시려 아버지 어머니께서 먼저 겪으신 희생과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가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한 영혼을 살리는 데 온 힘과 정성을 다하고 보니, 비로소 자녀 찾으시는 아버지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을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케냐에 오기 전에 기도드린 것처럼, 바다같이 넓고 깊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마지막 한 자녀를 다 찾을 때까지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과 기다림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심정을 헤아리며 잃은 형제자매를 찾아 쉼없이 달리겠습니다. 하늘 부모님의 본을 그대로 따르며, 제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