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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울타리

엄마의 속내를 헤아리기 어려운 이유

2020.07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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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 연휴 마지막 날, 엄마 생신 선물로 안경을 맞춰드리기로 했다. 오전부터 준비를 마친 엄마와 달리 나는 오후 내내 늑장을 부리다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나는 차로 편하게 가고 싶었지만, 엄마는 시내에 주차하기 힘드니 연휴 동안 못한 운동도 할 겸 버스를 타자고 했다. 엄마 말을 듣긴 했어도 나는 가는 내내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안경점에서 엄마에게 어울릴 만한 안경테를 몇 개 권했다.

    “이거 엄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이것저것 껴보던 엄마는 맘에 들지 않는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 친구가 안경을 맞췄는데 젊어 보이더라고….”

    엄마 말에 눈치 빠른 안경점 사장님이 요즘 잘 나가는 스타일이라며 내가 고른 것과 조금 다른 스타일의 테 몇 개를 엄마 앞에 내밀었다. 엄마는 그중 색깔로 포인트를 준 안경테를 하나 집어 들었다.

    “와! 그거 끼니까 인상이 또렷해 보이는 게 정말 예쁘네.”

    “손님, 정말 잘 어울리세요.”

    엄마도 마음에 드는지 안경을 끼고 이리저리 한참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안경에 붙은 가격표를 본 엄마가 깜짝 놀라며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이름 있는 브랜드 제품이라 질이 다르다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엄마는 슬그머니 안경테를 내려놓았다.

    “다시 써보니까 착용감이 별로야. 이게 훨씬 편하고 좋네.”

    마음에 들었던 안경테보다 훨씬 저렴한 것을 골라서 렌즈를 맞추는 동안, 엄마는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딸이 생일 선물로 안경을 해주는 거라고 엄마가 자랑하기에 내가 “딸 선물이니까 기왕이면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해” 하고 권했지만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다른 안경을 마음에 들어하던 엄마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 물었다.

    “엄마, 그 안경 말이야. 불편해서가 아니라 비싸서 안 산 거지?”

    “아니야, 테가 예쁘긴 한데 착용감은 별로더라.”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모양은 참 예뻤지….”

    나는 가끔 엄마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다. 짜증 나면 짜증을 내고 화가 나면 화를 낸다. 먹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솔직히 이야기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가 정말 좋아서 좋다고 하는 것인지, 싫어서 싫다고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 ‘엄마’로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버릇이 생긴 것일까?

    내가 침묵시위를 할 때도 엄마는 내 요구사항이 무언지 훤히 알고 있다. 엄마가 내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나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자식들 챙기느라 정작 자신의 속내는 잘 드러내지 않는 엄마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속상한 일은 없었는지 오늘부터 관심을 기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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