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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자식 잃은 어미 소는

2020.0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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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는 사회성이 강하다고 합니다. 수십 마리의 소가 한 축사 안에 지내더라도 각자 어울리는 무리가 따로 있고, 그러다 보니 평소 가까이 지내던 소와 헤어지면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답니다. 하물며 자식 잃은 어미 소의 심정은 어떨까요.

    십여 년 전쯤의 일입니다. 지인의 부모님 댁에 초대받았습니다. 두 어르신은 자녀들이 사는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골에 거주하셨는데 정갈하게 정돈된 마당에는 부추, 상추 같은 먹거리는 물론 흰색 방울꽃을 알알이 피워낸 둥굴레와 바위 틈새에 자리 잡은 송엽국, 접시꽃 등이 조화롭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마당 오른편을 돌면 흑진주같이 빛나는 새카만 눈동자의 아기 염소들이 어미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왼편 우리에서는 토끼 두 마리가 배춧잎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이 담요를 살짝 들어 보여주신 새장 안에는 눈도 뜨지 않은 새끼 고양이들이 꼬물거렸고요. 마당 곳곳은 두 분의 세심한 손길이 닿아 포근한 생명의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축사엔 덩치 큰 누렁소가 여러 마리였고 송아지도 보였습니다. 마릿수에 비해 축사가 넓은 편이고 소를 위한 작은 언덕도 있어 어르신들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습니다. 송아지가 언덕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신나서 뛴다는 성경의 표현이 절로 이해됐습니다. 송아지는 유독 한 소에게 몸을 비비고 기댔습니다.

    “어르신, 저 소가 어미 소인가 봐요?”

    그렇다는 어르신 대답을 듣고 다시 보니 송아지는 어미 소에게 몸을 비비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젖을 빨기도 했습니다. 행복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2~3주 후에 오일장에서 배추 이파리를 몇 포대 챙겨 어르신 집을 다시 찾았습니다. 여물을 한 움큼 줄 때마다 큰 혓바닥을 쑥 내밀어 남김없이 훑어가던 소들의 모습이 또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송아지가 얼마나 컸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송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르신은 사룟값이 너무 올라 어쩔 수 없이 송아지를 팔았다고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제 손에 어르신은 손수 재배한 부추며, 민들레잎 등의 야채를 쥐여주었습니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축사에서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짚이는 데가 있어 어르신에게 여쭈었습니다.

    “어미 소가 저렇게 우는 건가요?”

    “응, 송아지가 팔려 나가고서 며칠째 울어대네. 사료도 잘 먹지 않아.”

    어르신의 대답에 가슴이 아렸습니다. 축사에 가보니 어미 소는 슬픔이 그렁그렁 맺힌 눈망울을 끔뻑거리고 축사 이곳저곳을 헤매며 “음메 음메” 긴 울음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미 소의 슬픈 눈망울이 잊히지 않습니다. 어미와 자식 간의 이별은 가축들에게도 아픔이고 슬픔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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