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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아빠는 빼앗는 사람이 아니야

2025.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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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가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문장은 아니지만 “아니”, “네”, “물”, “좋아” 같은 짧은 단어들로 감정을 이야기하고 고집도 부립니다. 서랍을 열어 온갖 물건을 꺼내 헤집어 놓고, 의자에 기어 올라가거나 동전 같은 것을 입에 넣으려고도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급히 달려가서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 위험한 물건과 떨어트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소리 지르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위험해서 다른 물건으로 바꿔주려 한 거라고 설명해 보지만 아이는 계속 울 뿐입니다. 안전하고 더 좋은 물건을 서둘러 손에 대신 쥐여주고 나서도 시간이 좀 지나야 아이의 울음이 잦아듭니다.

    날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아이에게 저는 이미 ‘빼앗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위험한 물건에 손을 대려고 할 때 제가 아이에게 다가가면 아이는 황급히 물건을 집어서 “아니, 아니!” 하며 도망갑니다. 그 뒤를 쫓는 저는 아이가 뾰족하고 날카로운 부분에 다칠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아이는 도망치다 궁지에 몰려도 손에 쥔 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저는 전전긍긍하며 실랑이합니다.

    처음에는 말로 협상을 시도합니다.

    “아빠에게 그거 주지 않을래? 아야 하는 거라서 그래.”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한국어를 사용해 왔으니 아마 제가 말을 잘하지 못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가 말을 못 알아듣기 때문일 겁니다.

    그다음으로는 교섭을 시도해 봅니다.

    “그거 주면 아빠가 까까 줄게. 까까 먹을까? 맛있겠지?”

    때때로 이 단계에서 극적 타결을 이룰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가 손에 쥔 것이 세상에서, 아니 전 우주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라 생각하는지 대부분 타협을 거부합니다. 고작해야 고물, 쓰레기에 불과한 것을 왜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지’라고 해도 입에 넣으려고 고집을 부립니다. ‘지지’만 제게 넘기면 맛있는 과자를 다 준다는데도 싫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강제집행 단계에 들어갑니다. 아이가 쥔 손을 잡고, 다치지 않도록 힘을 써서 빼앗습니다. 아내는 아이가 다칠까 걱정이고, 저는 저대로 진땀 빼며 아이와 씨름합니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그때부터 눈이 벌게지도록 울어댑니다. 제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게 가끔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아이가 어서 말을 배워 알아듣기를 기다릴밖에요.

    “아빠는 빼앗는 사람이 아니야.”

    매번 같은 말로 아이를 타이르다 어느 날 혼잣말로 읊조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아빠는 빼앗는 사람이 아니지.”

    30년 동안 믿음 생활을 하면서 저는 많은 것을 누리지 못하며 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10대 때는 안식일이면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았고, 20대 때는 남들처럼 밤새 놀며 유흥을 즐기고 싶은데 안 된다고 하니 젊음의 특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했습니다. 30대가 되어 주위에서는 잘 살아보려 온갖 방법을 써가며 돈을 벌고 적당히 편법도 쓰는데, 정직하게 살아야 된다고 하니 세상 사는 지혜와 운을 놓친 것 같았습니다.

    하늘 아버지께, 왜 제가 원하는 것들을 주지 않으시냐고 원망할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을 겁니다.

    “아빠는 빼앗는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천국의 언어를 모르는 저는 알아듣지 못했을 겁니다.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내 아이의 오해가 얼마나 서운한지, 내 아이의 원망이 얼마나 아픈지, 그럼에도 내 아이의 손에 들린 더럽고 위험한 것은 어떻게든 치워버려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빼앗는 분이 아니라 주는 분이십니다. 제 영혼의 건강에 해를 주는 것은 멀리하게 하시고, 진정한 영적 자유와 천국에서 누릴 가장 좋은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영원토록 쓰고도 부족함이 없는 천운을 모아 주시고 더 좋은 것을 또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는 세상일이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이 말을 속으로 되뇌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아빠는 빼앗는 사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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