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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시원한 바람

수전을 갈면서

정장에이대팔21.02.062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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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처갓집에 갔을 때 일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아주 가는 물줄기가 수전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 세면대에서 물을 받아다가 설거지를 마무리했습니다. 장모님께 여쭤보니 언제부터인가 물줄기가 점점 약해지더니 지금처럼 됐다는 것입니다.

    얼마 뒤 다시 처가에 가보니 이번에는 싱크대 위에 물이 담긴 페트병이 잔뜩 늘어서 있었습니다. 바쁜 일정으로 수전을 고치지 못해 임시방편으로 페트병에 물을 담아 사용한다는 장모님 말씀을 듣고, 이참에 사위 노릇을 해야겠다 싶어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먼저 정수기와 세탁기 물을 틀어보았습니다. 싱크대를 제외한 다른 곳은 야속하리만치 시원하게 물이 쏟아졌습니다.

    한동안 원인을 찾지 못하자 보다 못한 가족들은 차라리 수리공을 부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결국 벽에 잘 붙어 있는 수전을 뜯어냈습니다. 수전 안쪽을 살펴보니 녹 찌꺼기가 수전 입구를 꽉 막고 있었습니다. 근처 철물점에서 새 수전을 사서 갈아 끼우고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을 틀었습니다.

    쏴아!

    반짝이는 수전에서 물줄기가 폭포처럼 시원하게 쏟아지는 순간, 모두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오랜 세월, 닦이지 않는 성품과 불순종의 찌끼가 축복의 물꼬를 막고 있지는 않는지 제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이제는 모든 찌끼를 제하고 어머니께서 허락하신 생명수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축복의 결과를 쏟아내는 자녀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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