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모님 품에서 완전히 독립했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한 자취 5년차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큰언니 집과, 대중교통으로 사오십 분 거리에 있는 부모님 집을 최근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때마다 반찬, 과일, 간식거리를 한아름 싸들고 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럴 거면 자취를 왜 하느냐는 작은언니의 핀잔은 이제 안 들으면 섭섭할 정도다.
뒤늦게 철이 드는지 요즘은 진정으로 독립해보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혼자 지내려면 간단한 반찬 정도는 해먹으라는 엄마의 걱정이 가장 먼저 생각나 일단 요리부터 해보기로 결심했다. 요리 이야기라면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내가, 엄마와 언니들이 일일이 알려주던 조리법들을 찬찬히 떠올리는 것부터가 신기했다. 어설프지만 평소 좋아하는 떡국도 끓여 먹고, 담백한 두부조림과 매콤한 꽁치조림도 직접 만들었다. 콩나물과 숙주조차 구분하지 못했던 과거가 무색하게 이제는 콩나물 무침과 숙주 무침도 요리할 수 있게 됐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큰언니에게 전화해 내 손으로 만들어 먹은 반찬들을 하나하나 자랑했다. 기특해하던 큰언니는 새로운 조리법을 전수해주었다. 서툴러도 직접 요리했다는 뿌듯함에 언니에게 날마다 자랑을 늘어놓았더니 그 소식이 엄마의 귀에도 들어갔다. 엄마는 당근, 감자, 양파, 오렌지, 토마토주스를 봉투에 야무지게 담아 언니 손에 들려 보냈다. 몇 달 전이었다면 맛있게 만든 반찬을 커다란 반찬통 두세 개에 차곡차곡 넣어 보내셨을 것이다. 엄마가 보내준 식재료들을 훑어보며 어떻게 요리할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언젠가 “아이고, 우리 막둥이 잘 해 먹네” 하며 칭찬해주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언니가 돌아가자마자 엄마에게 재빨리 전화했다.
“엄마, 감자랑 양파, 당근, 오렌지, 토마토주스 잘 받았어. 그런데 웬 감자야? 이거 두부조림 밑에 깔아서 익혀 먹으면 되겠지?”
엄마는 내가 이렇게 조곤조곤 빠짐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엄마가 자주 해주던 조리법을 떠올리며, 막내딸을 생각해 식재료를 챙겨 넣었을 엄마에게 감사를 전했다.
“감자를 한 상자 주문했는데 영 퍽퍽하더라. 얇게 썰어서 자박하게 물을 넣고 약간 삶아야 부드러워져. 어느 정도 익으면 들기름이랑 양파 넣고…. 다진 마늘 있지? 고춧가루, 소금도 뿌려서 볶아 먹어. 옛날에 너희 할머니가 그렇게 해주셨어.”
“맞아, 그거 맛있었지. 알겠어.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모녀 사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화였다. 음식은 잘 해 먹느냐는 엄마의 걱정이 전화의 시작과 끝이었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못할 때에는 직접 만들어 먹이고, 뭐라도 해보려 노력할 때에는 그에 맞춰 도와주고, 잘 해낼 때에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 엄마의 사랑법이다.
하늘 어머니의 사랑법도 이와 같을까? 아무것도 몰라 방황할 때에는 첫걸음마부터 사랑으로 보살펴주시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노라면 여전한 관심으로 세세히 도와주시고, 어느덧 장성한 자녀가 되면 더없는 칭찬과 격려로 이끌어주시는 하늘 어머니.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관심으로 손잡아주시는 하늘 어머니의 사랑을 오늘도 가슴 깊이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