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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옥수수 한 알에도

2026.0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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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골에서 올라온 어머니는 오늘도 갓 쪄서 뜨끈뜨끈한 옥수수 한 보따리를 현관 앞에 내려놓고 가셨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 질리도록 먹은 옥수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단지 옥수수를 좋아하는 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은 그대로, 반은 알알이 까서 냉동실에 얼린다. 그 많은 옥수수를 며칠에 걸쳐 알알이 까다 보면 엄지손가락이 뻐근하다. 즐겁지 않은 노동이기에 입을 비죽이며 할 때도 있다.

    은퇴 후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아버지가 발을 다쳐 옥수수를 딸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함께 새벽 일찍 시골로 내려갔다. 극한 폭염이 한풀 꺾이기는 했어도 시골 햇볕은 아프도록 따갑기만 했다. 팔 토시에 모자까지 중무장을 하고 밭으로 갔다. 어머니가 옥수수를 따면 나는 껍질을 벗겼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힘을 주어 옥수수 대를 꺾느라 나중에는 엄지손가락 감각이 없어졌다.

    작업이 끝났나 싶었는데, 이웃집에서 갖다 놓은 옥수수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영글어서 먹기 어려울 것 같다며 닭 모이나 해야겠단 말에도 어머니는 가마솥에 푹 찌면 먹을 수 있을 거라며 옥수수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하게 쌓인 옥수수 더미는 가마솥에 다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가마솥에 두 시간 넘게 푹 삶아내니 그제야 구수하고 쫀득한 맛있는 옥수수가 되었다.

    삶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뜨거운 가마솥에서 펄펄 김이 나는 옥수수를 건져내 식히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래야 시간이 지나도 상할 염려 없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어머니는 소쿠리에 건져낸 옥수수를 겉이 마르지 않게 껍질로 한 겹씩 싸서 그중 제일 예쁘고 맛있게 생긴 걸로만 골라 우리 가족 몫으로 따로 챙겼다. 알이 얼기설기 난 못난이 옥수수는 모두 부모님 몫이었다. 발을 다친 아버지는 팅팅 부은 발로 절룩거리면서도 옥수수가 잘 삶아지도록 장작을 더 넣기도 빼기도 하며 쉼 없이 움직였다. 상처가 덧날까 앉아서 쉬시라고 해도 어머니가 옥수수 삶는 데 덜 힘들도록 의자를 갖다 놓기도 하고 그릇이나 소쿠리를 옮겨두기도 했다. 옥수수 삶는 냄새가 마당 가득 퍼져나갈수록 아버지와 어머니는 뜨거운 땀으로 젖어갔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지켜보자니 그동안 다 삶아 가져다준 옥수수마저 달가워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버지 어머니의 수고에 비하면 옥수수 알을 까고 얼리는 나의 수고는 민망할 정도였다.

    자식한테 좋은 것, 맛있는 것 먹이겠다는 마음 앞에는 아픈 다리도, 한여름 작열하는 뙤약볕도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왔던, 때론 귀찮게 여기기도 했던 옥수수에 아버지의 희생이, 어머니의 사랑이 녹아 있음을 깨닫고 나니 한 알 한 알이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졌다.

    내 오랜 믿음 생활을 되돌아본다. 매주 지키는 안식일, 매년 지키는 유월절에 하늘 아버지의 희생이, 하늘 어머니의 사랑이 녹아 있음을 잊어버린 채 습관처럼 지키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새 언약의 절기를 회복해 주시려 고난도 마다치 않으신 하늘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매 예배를 소중히 지키리라.

    오늘은 옥수수가 유달리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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