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까지 엄마인 제가 가족의 살림을 도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정에 작은 우렁각시가 있었습니다.
“엄마, 그릇에 붙어있는 이 노란 거 뭐예요? 달걀노른자 말라붙은 거 아니에요? 그릇이 덜 불었었나 봐요.”
첫째가 식기 건조대에 엎어 놓은 접시와 국그릇을 확인하더니 말을 이었습니다.
“접시의 기름기가 덜 닦인 것 같고, 국그릇에도 뭐가 묻었어요.”
놀란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습니다. 과연 아이의 말대로 그릇, 접시, 프라이팬 등 어느 것 하나 뽀득뽀득한 느낌 없이 미끈거렸고, 음식물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한여름에도 김이 나는 뜨거운 물로 설거지를 하는 저로서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남편을 쳐다보았습니다. 남편은 자기는 결백하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저으며 가슴 앞에 큰 엑스 자를 만들어 보였습니다. 그릇을 발견한 첫째와 책을 읽는 둘째를 지나쳐, 식탁에서 숙제를 하던 막내에게 눈길이 닿았을 때, 식탁 밑으로 쉴 새 없이 왼발로 오른발을 쓸어내렸다가 다시 오른발로 왼발을 쓸어내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같은 집 안에 있어도 제가 무엇을 하는지 늘 궁금해하고 저를 보고 싶어 하는 막내가 저 몰래 설거지를 해놓은 것이었습니다. 순간 피식 하고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엄마라고 늘 완벽하냐며, 엄마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다고 말하고는 설거지를 시작했습니다. 그날 막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초저녁에 식사 준비를 해놓고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깨어서 부엌으로 가보니 싱크대에 담겨있던 그릇들이 모조리 씻겨 있었습니다. 식기 건조대 위에 엎어 놓은 그릇에 손을 댔을 때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걸 보니 막내도 발전(?)해 온수로 설거지를 해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릇을 뒤집어 보자 지난번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큰 냄비와 지름이 넓은 면기에는 얼룩이 여기저기 남아있었습니다. 혹시나 아이의 마음이 상할까 싶어 저는 조용히 다시 한번 헹궜습니다. 그러고는 막내 아이의 방으로 갔습니다.
“시윤아, 우리 집에 우렁각시가 있나 봐. 엄마가 피곤해서 잠깐 자는 동안 누가 설거지를 깨끗하게 다 해놨지 뭐야.”
아이는 평소와 달리 제 얼굴을 보지 않고 숙제하던 공책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엄마가 혼자 집안일 다 하고 설거지하시면 어깨가 아플 테니까 누군가 대신 해놨나 보죠.”
시치미 뚝 떼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아이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다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랬구나, 우렁 시윤이, 너무너무 고마워.”
막내는 제 칭찬에 힘을 얻었는지 그 뒤로도 종종 몰래몰래 설거지를 해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아이를 기특하게 여기면서도 잘 안 된 그릇을 찾아 설거지를 두 번 해야 하니 번거로울 테고 혹시 그릇에 남아있을지 모를 세제가 아이들 건강에 영향을 미칠까 염려했습니다. 아이에게 잘 설명해 설거지를 그만두게 하자는 남편의 말을 듣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가족들이 각자의 방에 있을 때 막내가 주방에서 조용히 설거지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가슴 높이까지 오는 싱크대 앞에 서서 그릇을 하나하나 수세미로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힘이 들어가는지 입술을 요리조리 움직여 가며 열심히 설거지하는 모습에서 그 바탕에 스며있는, 엄마와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막내가 그저 기특하고 고맙고 예뻤습니다.
하늘 부모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 완성하실 수 있는 천국 복음을 자녀들에게 맡기시고 지켜봐 주시며 도와주십니다. 자녀들이 복받기를 바라시는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실수해도 돌이켜 회개하며 성장해 가는 자녀들을 아름답게 바라보시는 하늘 부모님. 하늘 고향 돌아가는 그날까지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시는 엘로힘 하나님의 그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해 드리기 위해 전 세계에 시온의 향기를 전하는 자녀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