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무렵 겨울, 엄마를 따라 세 살 위인 둘째 형과 서울 구경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강원도 산골 마을로 시집을 온 후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그리운 친척 어른을 찾아뵈러 나선 길이었다.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다녀오련만 그때는 서울 가는 길이 어찌 그리 멀고도 힘들었는지…. 당시 시골 사람들에게 서울이란 한 번 다녀오기만 해도 며칠 동안 자랑거리가 되는 곳이었다. 동시에 ‘눈 뜨고 코 베인다’며 혀를 내두를 만큼 두려운 곳이기도 했다.
고속버스와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택시라는 것도 탔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이 많았지만 나는 차라리 시골로 돌아가 친구들과 공 차기, 썰매 타기, 딱지치기를 하며 노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들고 지루한 여정 끝에 우리는 어떤 큰 동네에 도착했다. 몇 차선인지도 모를 넓은 도로에는 버스와 택시, 트럭 들이 빵빵거리며 지나갔고, 수많은 인파에 정신이 없었다.
엄마에게 이끌려 동네 슈퍼에 들어갔다. 친척에게 드릴 선물이라도 하나 사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슈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문 앞에 겹겹이 쌓인 동그란 딱지가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수많은 딱지들이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최신 인기 TV 만화의 주인공들이 다 있는 것 같았다. 서울 딱지는 그림이 더 멋져 보였고 테두리의 별은 진짜 별처럼 빛났다. 주인의 눈치를 살피며 살짝 만져본 서울 딱지는 더 두껍고 크기도 더 커 보였다. 게다가 옆에는 두 배 크기의 왕딱지도 있었다. 나는 그만 서울 딱지에 온 정신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황홀한 우주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엄마를 간절히 쳐다보았다.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딱지에 넋이 나간 막내아들이 딱해 보였는지 엄마는 내 입이 귀에 걸릴 만큼 딱지를 사주었다.
슈퍼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딱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동그란 딱지를 하나하나 떼어 손에 쥐었다. 시골에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자랑할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딱지마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고 별의 개수도 세어보고, 딱지 개수도 세어보고, 또다시 세어보고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엄마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얼마쯤 갔을까. 문득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옆을 바라보았다. 엄마도, 형도 안 보였다. 온통 낯선 사람들뿐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엄마와 형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공포가 밀려왔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당황한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얗게 겁에 질린 나는 무작정 앞으로 뛰었다. 저 앞에 엄마가 있기를 바라며….
자동차 엔진 소리,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 지나치는 수많은 낯선 사람들…. 어디에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저만치 하얀 장갑을 끼고 호루라기를 불며 수신호로 차량들을 통제하는 교통경찰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이 얼굴이 일그러졌던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엄마, 엄마!”
애타게 엄마를 부르며 우는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며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얼마나 울고 있었을까. 눈물 너머 웃으면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가만 보니 형이었다. 형이 안도의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나를 끌어안았다.
“울지 마! 엄마 저기 있어. 우리 빨리 엄마한테 가자!”
형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얼마쯤 형을 따라가니 엄마가 보였다. 엄마가 웃으며 팔을 활짝 벌려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와락 엄마 품에 안겼다. 엄마 품에 안겨서도 한참을 훌쩍거렸다. 눈물 젖은 딱지를 손에 꼭 쥔 채.
하늘 어머니 손 잡고 하늘 본향 돌아가는 길, 엄마의 손을 놓고 딱지에 정신이 팔린 기억 속의 어린아이가 지금 내 모습은 아닌지 돌아본다. 혹 아직도 딱지를 손에 꼭 쥐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