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우리 집엔 가난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지만, 그 안에는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사랑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사랑이야말로 오늘까지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어머니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라셨다. 스물셋에 아버지를 만나 시골의 가난한 집으로 시집오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고된 시집살이, 대가족의 살림살이…. 철없던 새댁은 그렇게 홀로 모든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어머니는 그 어떤 힘든 순간에도 집을 떠나지 않으셨다. 그 이유를 훗날 알게 되었다.
“내가 이 집을 나가면, 어린 두 딸이 이 시집살이를 감당해야 하잖아….”
어머니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버티셨고, 그 사랑은 내 마음 깊숙이 새겨졌다. 아마도 그 순간부터 엘로힘 하나님의 사랑이 친정어머니를 통해 내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우리는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사했지만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어머니는 새벽 2시면 어시장으로 나가 생선을 손질하셨고, 아침에는 또 다른 일터로 향하셨다. 자신을 온전히 태워가며 가족의 하루 세끼를 빠짐없이 챙기셨다.
어린 시절, 성경책을 펼치던 어머니의 모습을 자주 보았다. 40년 전, 단칸방에서 어떤 두 분과 함께 성경 공부를 하시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해, 나는 초등학생 나이에 침례를 받았고, 아버지도 뒤따라 침례를 받으셨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절기인 유월절을 지키는 축복을 받았다. 안식일마다 예쁜 옷을 입고 드린 예배, 교회에서 나눠 먹던 과일 화채, 그리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시던 한 분…. 나중에 알았다. 그분이 바로 어머니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 가족이 믿음을 지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어머니는 할머니의 반대로 결국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외환위기 여파로 생계가 어려워지며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나 빠졌고, 우리 자매는 친척 집에 맡겨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무너지지 않으셨다. 다시 일어나 우리를 데려오고 가정을 회복시키셨다.
30년이 지나, 어머니는 다시 시온을 찾으셨다. 우연히 ‘우리 어머니’ 글과 사진전을 홍보하던 하나님의 교회 식구분을 만난 어머니는 반가운 마음에 곧장 교회로 가셨고, 다시금 믿음의 길에 들어섰다. 그 무렵 나는 갓 출산한 터라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기에 어머니가 왜 그렇게 밝고 행복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어머니의 신앙생활을 반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흔들리지 않으셨다. 한겨울, 백일 된 손자를 등에 업고, 네 살 손녀의 손을 잡고 교회로 향하는 어머니를 보며 왜 저렇게까지 하시나 생각했지만, 이제는 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머니의 믿음을. 그리고 우리 가족을 향한 엘로힘 하나님의 간절한 부르심을.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산후우울증을 겪던 내게 네 살 된 딸아이가 말했다.
“다른 언니들은 엄마랑 같이 교회 오는데, 나는 할머니랑만 가. 엄마도 같이 가자….”
그 한마디에 마음 문이 열렸고, 다음 날 안식일 예배에 참석했다. 교회 식구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면서 ‘나도 이 교회를 다녀야겠다’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해, 동생과 제부, 조카들 그리고 친정아버지까지 함께 유월절을 지키면서 나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우리 가족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그 사랑이 가슴 깊이 밀려왔다.
몇 해 전, 아버지께서 암 투병을 시작하셨다. 수술 전날, 집 안을 조용히 정리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울고 말았다. 아버지는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간절히 기도드리셨다.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셔서 손주들과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당신의 아내를 위해 헌신하신다. 마치 아버지를 다시 만난 듯했다. 무뚝뚝한 말과 행동 속에 숨겨졌던 아버지의 사랑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족은, ‘사랑’이 말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 아버지의 묵묵한 뒷모습 속에는 수많은 날의 희생과 인내가 담겨 있었다. 그 사랑이야말로 내 삶을 붙드는 가장 큰 기둥이다.
그 모든 사랑의 근원은 엘로힘 하나님이시다. 잠잠히 기다리시며 우리 가족 모두를 품에 안아주신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제 그 사랑을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다.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이 이제는 내 삶의 전부이자 감사의 이유가 되었기에. 또한 부모님이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우리 곁에서 웃으며 살아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가족이란, 세상의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나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엘로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장 따뜻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