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이 제가 학생 시절 취득한 태권도 단증과 자격증, 입사 면접 수험표와 재직 증명서 등을 어머니전에 출품했습니다. 스치듯 이야기했던 제 인생의 단편을 기억하고 저와 함께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해 준 자녀들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는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농사일에 집안일, 자식들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쉴 틈이 없으시면서도 막둥이인 저를 살뜰하게 보듬고 신경 써주셨습니다. 학교에 일이 있어 엄마가 예쁜 옷을 차려입고 선생님을 만나러 왔을 때, 운동회에 와서 챙겨주실 때는 정말 좋았습니다. 집안 살림이 넉넉지 않았어도 엄마의 따듯한 사랑 덕분에 저는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철없는 막내딸은 알아채지 못한, 엄마의 몸고생과 마음고생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나 봅니다. 엄마는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무렵부터 병원에 다니시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아픈 엄마를 돌보려 언니들, 형부들, 오빠들이 들락날락하던 집이, 장례를 치르고 나니 텅 비었습니다. 허허벌판에 저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춘기까지 맞은 저는 마음 둘 곳이 없어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
다음 해, 학교 앞에 태권도장이 생겼습니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매트가 깔린 도장을 들여다보는데 태권도가 너무 배우고 싶은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강인해져서 홀로 서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 시골 마을에서 누가 선뜻 학원비 내줘가며 여자아이에게 태권도를 배우게 했겠습니까마는, 저는 아빠를 조르고 졸라 도장에 등록했습니다.
운동이 적성에 맞았는지 아침에 집에서 학교까지 10리나 되는 길을 뛰어서 등교하며 체력을 기르고, 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한창 방황하던 시기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수단이었던 운동이 의외로 자녀를 키울 때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함께 뛰어다니며 축구 같은 운동을 해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운 뒤로는 음악에 맞춰 태권도 동작을 취하는 연습도 하면서 아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지요. 그 시간이 성인이 된 자녀들에게도, 제게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엄마가 안 계신 집에 마음 붙이지 못했던 저는 시골을 떠나 도회지로 나가기를 꿈꾸며 상업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고입을 앞둔 겨울부터 주산, 부기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초등학생 적부터 주산을 배운 친구들이 많았는데 밖으로 나돌기만 하고 주판 한 번 튕겨본 적 없던 제가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려니 얼마나 좀이 쑤시던지요. 그래도 내 삶은 내가 개척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꾹 참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주산, 부기, 타자, 정보 처리 등 당시 취업에 필요했던 자격증들을 따고, 매일 공책 2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연습해 펜글씨 검정 시험에도 합격했습니다.
학교생활에도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수업을 열심히 들으며 반장, 부반장도 맡고, 공채반에 들어가 도시락을 2개씩 싸서 다니며 야간 학습에도 참여했습니다. 기업 공채에 합격해 본사로 발령 나서 꿈을 이뤘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언니들은 제게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도 반듯하게 커줘서 고마워”라고 합니다. 잠시 혼란을 겪기는 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노력해 꿈을 이룰 수 있던 것도, 엄마가 되어 자녀들을 잘 양육할 수 있었던 것도 어린 시절 받았던 엄마의 사랑이 제 마음속에 확실히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올바르게 살기를 바랐을 엄마의 마음을 배반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사랑을 받은 만큼 저도 자녀들을 사랑으로 기르며, ‘엄마는 항상 너희 곁에 있는, 너희 편이란다’ 하는 심정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어느새 장성한 아들은 결혼해 해외에 거주하고, 딸은 타지에서 직장에 다니며 자취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을 품에서 떠나보내던 날에는 허전함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렸을 때 더 따뜻한 가정, 더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했는데, 그렇게 해주지 못했던 기억들만 떠올라 미안했습니다. 이제는 어디에 있든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돌봐주시니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자녀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을 바랍니다.
막내딸을 사랑으로 품어주시던 엄마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관심의 전부를 두시며 노심초사 염려하시는 하늘 어머니의 마음을, 제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조금이나마 헤아려봅니다.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저 역시 자녀들에게 그 사랑을 대물림할 수 있도록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엄마 그리고 하늘 어머니, 마음 다해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