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부터 목회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반쪽짜리 꿈이었습니다. 목회자라면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야 할 텐데, 영어가 어렵다는 이유로 해외 선교만큼은 다른 누군가의 몫으로 여겼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매사에 그랬습니다. 복음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 저의 기준을 앞세우거나 지난 경험과 얕은 지식에 의지해 과정부터 결과까지 미리 속단하고는 했습니다. 이런 모순을 깨닫고 깨뜨리게 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몇 차례에 걸친 해외 선교였습니다.
꿈을 이루는 과정이 마음처럼 쉽지 않던 때, 브라질 쿠리치바로 처음 단기선교를 떠났습니다. 제게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깨달아 채우면서 성장하고 싶었지만, 막상 가서 보니 생소한 포르투갈어부터 모든 게 어렵고 부족해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할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손 놓고 있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쿠리치바가 있는 파라나주(州)의 면적은 대한민국의 약 2배인데 시온은 단 세 곳뿐이라 할 줄 아는 것 없는 제 손길이라도 보태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목표는 브라질 복음을 완성하는 데 쓰임받는 목회자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상파울루로 장기선교를 갔습니다. 정신없이 바빴던 단기선교 때와는 분명 다른 점이 많았습니다. 낯선 정도를 넘어 납득하기 어려운 현지 문화를 이해해야 했고, 짧은 시간에 식구들을 찾고 귀국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남아 새 식구들을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도 믿음이 서지 않아 꾸준히 시온으로 발걸음하지 못하고 결국 돌아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픈 동시에 허탈했습니다. 학생부 지도교사를 맡아 당회에 도움이 되어보려 했지만 성인들과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제게 학생들의 어휘는 더더욱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한국에서의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해왔으니까 그대로 하면 될 거야.’
‘언어가 미숙하니까 좀 더 완벽해지면 식구들에게 다가가야지.’
‘이 사람은 찾아가도 어차피 못 만날 것 같은데….’
이런저런 여건을 따지며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늘면서 발걸음은 점점 둔해졌습니다. 한국에서 차곡차곡 쌓아 온 경험이 오히려 제 눈을 가리고 행동을 방해하는 큰 산으로 작용했다고 할까요. 이대로는 이도 저도 제대로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해 보려 했습니다.
제가 처음 목회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건 하늘 어머니께서 하루를 보내시는 모습을 담은 영상물을 보고서였습니다. 죄로 인해 하늘에서 쫓겨난 영혼들을 구원하시려 가장 희생하시고 헌신하시면서도 늘 웃음과 사랑으로 자녀들을 대하시는 어머니께 기쁨을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역시 제각각 다른 성정과 생각으로 구원의 길을 올곧게 걷지 못하는 자녀들로 걱정과 고민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럼에도 주저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고 삶을 바쳐 복음을 전하고 자녀들을 돌보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상황과 여건을 재고 따지셨다면 오늘날 저희는 시온에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께 제가 이곳에서 기쁨을 드릴 방법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의지할 대상은 제 경험도 생각도 아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었고요.
눈앞의 영혼들을 살려야 한다는 본질에 집중하니 생각의 틀이 깨졌습니다. 문화 차이를 뛰어넘으려면 제가 먼저 다가가야 했고, 아무리 먼 곳이라도 찾아가서 성경 말씀을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영혼 구원이라는 중심이 확실히 선 뒤로는 번역기와 사전, 현지 식구들의 도움을 동원해 어떻게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배우기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생각할 때는 전혀 늘지 않던 언어 실력이 점차 늘었습니다. 어떤 때는 ‘이렇게 말해도 알아들을까’ 싶은데 상대방이 알아듣고 진리를 영접하기도 했습니다. 제게 정말 필요한 건 단지 외국어 능력이 아니라 한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함이었음을 그때 알았습니다.
문화 차이와 언어 장벽은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큰 걸림돌이 아니었습니다. 시온에 자주 나오는 학생 형제님이 있었는데, 사춘기가 오면서 말도 잘 하지 않고 그 생각을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학생부 활동 때도 눈길을 피하기만 하다 어느 순간 겉도는 형제님에게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어머니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며 이해하고 가까워지려 애썼습니다. 그러는 사이 형제님이 점점 마음 문을 열고 잘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는 그간 말을 잘 안 들어서 미안하다며, 앞으로 말씀 공부 잘하고 있을 테니까 꼭 브라질에 다시 오라는 편지까지 써줘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사실 형제님도 지구 반대편에서 온 지도교사의 말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 사랑을 나누려는 진심이 서로 통했고, 그 모습을 본 현지 식구들이 함께 기도하고 도와주면서 저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현지에 녹아들며 시온 가족들과 어우러져 함께 전도하고, 함께 새 식구를 돌보면서 상파울루에서 130명이 넘는 형제자매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형제님은, 직장을 옮기기 위해 일을 쉬고 있어 매일 말씀을 살폈습니다. 예배의 중요성을 깨달은 형제님은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근무 시간을 조정해가며 규례를 지켰습니다. 추후 단기선교로 브라질을 다시 방문했을 때, 형제님이 전도에 열심 내는 일꾼으로 성장해 있어 더욱 감사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면서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것은 참으로 모순된 행동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을 뒤로한 채 내 마음대로 결과를 판단하는 것도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복음 일을 계획하고 실천할 때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주변 여건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외 선교는 타인을 살리는 동시에, 제 믿음의 현주소를 깨닫고 더 성장하게 해주는 기회였습니다.
이제는 제가 나아가는 길이 ‘나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이기를 바랍니다. 지금껏 제 생각대로 행한 경험이 천국 복음 완성을 향해 정진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다면 하나님을 의지해서 축복받은 경험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디에,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 뜻을 먼저 헤아리고 순종하는 방법을 배우며,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고 복음 완성이라는 사명을 향해 어디로든 나아가는 선지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