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가득하고 넘쳐나던 봄이 지나고 이제는 여름입니다. 열매를 준비하는 계절, 이미 열매를 맺어가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농업을 배우기 위해 김제로 내려와 보니 농장들도 다들 바빠 계절의 감상에 빠져 있기가 민망하기도 합니다. 농업에 대해서 모를 때는 그저 봄은 찬란하고, 여름은 생동력이 넘치는 계절이구나 하고, 한 줄 감상으로 계절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켜 마음에 욱여넣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농업을 마주하고 살아가다 보니 한 줄의 감상으로 그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매일이 영화였고 매 순간이 드라마였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줄의 감상평을 내놓는 것뿐이고, 모든 것을 함께해야 비로소 주인공이 되는 이치는 어디든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농업을 통해 재미있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작물의 성장, 즉 ‘생장’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데, 작물이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더군요. 생장에는 두 가지 과정이 있다고 합니다. 영양생장과 생식생장인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영양생장은 줄기가 자라고 잎이 돋으며 작물이 제 크기를 키우는 과정이고, 생식생장은 작물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입니다. 사실 사람이 키우는 작물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식물이 이렇게 성장이 나뉘는데 제가 몰랐던 것이죠.
생장에 대해 배우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몸집을 키우는 영양생장과 열매를 맺는 생식생장의 환경에 대해서였습니다. 작물을 키울 때는 세 가지 요소가 꼭 필요합니다. 바로 ‘물, 빛, 온도’입니다. 충분한 물과 충분한 빛, 적당한 온도는 식물이 자라기에 최적의 환경으로, 줄기를 키우고 잎을 내는 영양생장에 가장 좋은 환경입니다. 그런데 생식생장, 즉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데 가장 좋은 환경은 좀 달랐습니다. 늘 충분하게 물과 빛을 주고, 적당한 온도에서만 지내게 하면 작물이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당연히 열매를 맺지도 못하고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도 주고 빛도 주고 온도도 딱 좋게 맞춰주면 줄기를 키우고 잎도 많이 내고,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맺어야 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렇게 다 해주고 다 맞춰줬는데 정작 열매를 맺지 못하고 제 몸만 키운다니 괘씸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작물을 키울 때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지 않으면 농부는 환경을 바꿔준다고 합니다. 제 몸만 키우는 영양생장에서 열매를 맺는 생식생장으로 유도하는 것이지요. 물을 충분히 주지 않거나, 빛을 충분히 주지 않거나, 온도를 적절히 맞춰주지 않습니다. 소위 ‘스트레스’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작물이 죽을 정도로 물을 안 주거나, 해를 가려버리거나, 영하의 온도에 두지는 않습니다. 그저 지금껏 농장에서 제공하던 가장 좋은 환경을 조금, 아주 조금 바꾸는 것뿐이지요. 큰 스트레스를 주면 작물들이 죽을 수 있기에, 농부는 작물들이 건강을 잃지 않고 열매를 맺도록 아주 미묘하고 가벼운 스트레스를 줍니다.
그때부터 작물들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농장 이곳저곳에서 꽃을 피우고 앞다퉈 열매를 달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가장 좋은 환경에서 키워온 줄기는 튼튼하게 자라서 열매가 잔뜩 열리더라도 부러지지 않습니다. 그동안 가장 좋은 환경에서 키워온 잎들은 햇빛을 잔뜩 받아 열매에 영양분을 가득히 채워줍니다. 줄기가 자라고 가지를 내고 잎을 내는 영양생장 시기에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생식생장 시기에도 뿌리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묵묵히 물과 영양분을 퍼 올립니다.
만물의 이치에는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광야 시대에도 사도 시대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엘로힘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만물에 가만히 담아 두시고 자녀들이 알아채기를 기다리고 기다리신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귀한 자녀들이 혹여라도 갈할까 생명수를 주시고, 혹여라도 어두운 세상에서 시들까 당신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의 빛을 기꺼이 내려주셨습니다. 그도 부족하시어 결국 이 춥고 황량한 세상에 오시어 자녀들을 따듯하게 품어주셨습니다. 부족한 것 없는 안온한 세상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무럭무럭 커가는 자녀들을 가만히 보고만 계실 수도 없으셨습니다. 그저 줄기만 튼튼하고 잎만 무성한 작물,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라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을 테니까요. 제 몸만 잔뜩 키워 어디에도 쓸데가 없고, 누구에게도 기쁨이 되지 못하는 작물의 말로를 보았습니다. 줄기째 통째로 끊어내어 모아 두었다가 바싹 말라버린 전부를 내다 버리는 것을 보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엘로힘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그리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으셨기에 우리 각자에게 아주 작고 미미한 ‘스트레스’를 주기로 하셨습니다.
줄기가 튼튼히 자라고 잎을 무성히 내면 그다음 해야 할 일은, 줄기를 더 튼튼히 자라게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잎을 더 내는 일도 아니었고요. 튼튼한 잎과 줄기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농부의 일은 열매를 맺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하늘 어머니께서 하시는 일이 자녀들을 돕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뜻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약하고 미련한 인생을 아직도 벗지 못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로 저는 여전히 괴로움을 느낍니다. 한때는 엘로힘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천국 가기까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안온하고 좋은 것들만 주시면 안 되는지 원망 섞인 의문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엘로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녀들이 모욕당하고 괴롭힘당하기를 원할까요. 그럼에도 엘로힘 하나님께서는 아픈 마음을 가슴에 묵묵히 오랜 세월 쌓아 두셨습니다. 켜켜이 쌓인 아픔에 하늘 같은 가슴이 돌무더기로 가득히 채워져 숨이 눌리기까지도 한숨 한번 내쉬지 않으셨다지요. 그저 자녀가 열매 하나라도 맺기를 바라시며, 한 자녀라도 내버려지는 운명에 처할까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시면서요.
모든 작물은 결국 더 이상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계절이 옵니다.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다급한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지만 엘로힘 하나님께서 가시는 길을 함께하기를 원하고 원합니다. 우리 모두 계절이 바뀌는 것을 단지 감상 한 줄로 넘길 것이 아니라, 영화 같고 드라마 같은 하늘 부모님의 역사에 함께 정주하며, 그 주인공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