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들, 고맙데이.”
내게도 엄마가 계셨는데,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저희가 누린 호사 뒤에는 20년 넘도록 아파트 주민들을 위해 일한 경비원 어르신의 묵묵한 헌신이 있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휴대폰을 찾으면 꼭 연락할게. 반드시 찾게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꿀벌통이란다. 아부지가 너 꿀 먹게 해주려고 사 오셨대.”
어릴 적 이불 빨래는 연중행사처럼 치르는 큰 일거리였다.
특별한 추억 속 음식에는 꼭 함께한 가족이 있었다.
부산은 아버지 향기가 많이 나는 도시입니다.
아버지가 바다에 가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부지는 괜찮으니까 어여 먹어.”
“너거들 땜에 힘든 줄도 모르고 살았지. 그 세월을 어찌 글로 다 적겠냐.”
귀찮고 싫어도 아버지의 정성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봐라. 저기 우리 집이 보인다. 이제 여기까지 왔으면 다 온 거나 마찬가지다.”
“엄마, 내가 엄마 아프게 하고 늙게 해서 미안해.”
“이제 보니 애들이 많이 컸네.”